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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경제] 외환위기도 잘 견뎠다. 5대양을 내 집앞처럼 누비며 25년 이상 쉼없이 일했다. 그 사이 개발도상국이던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 앞에 백전노장도 설 자리가 없어져 퇴출됐다. 어느 대기업 간부가 아닌, 각종 원자재를 실어나르며 산업역군으로 활약했던 벌크선 이야기다.
최근 해운업계가 크게 위축되면서 선박 해체량이 늘고 있다. 사용연한이 남았어도 조기 폐선돼 고철덩어리 신세가 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철광석과 석탄 등을 나르는 건화물선의 해체량은 200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983년 건조된 벌크선 오세아니아 1호는 25년간 호주와 캐나다에서 철광석과 석탄을 국내로 실어날랐다. 이 원자재들은 모두 포스코에 공급됐다. 포항제철로 시작해 세계 2위의 철강기업으로 성장한 포스코의 역사를 함께 해온 셈이다. 13만9887DWT(재화중량t) 규모의 이 벌크선은 연간 수백만톤의 원자재를 실어날랐지만 지난해 운송량 급감 및 노후화로 인해 해외로 매각된 뒤 해체됐다.
1978년 만들어진 삼미 오로라호는 30년간 모두 207차례나 운항에 나섰던 베테랑 선박이다. 한국제분공업협회 전용선으로 국내로 들어오는 밀가루를 전담했다. 주로 미국 서부 포틀랜드나 캐나다 밴쿠버 등에서 밀가루를 실어 한국의 부산과 인천, 목포항으로 운송해 왔다.
통상 선박의 수명은 25년이지만 이 선박은 관리 상태가 좋아 5년 정도 더 운항할 수 있다는 게 해운사의 평가다. 그러나 운송량 급감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오로라 호는 지난 29일 중국의 한 폐선장으로 출항, 2월 중 해체될 예정이다.
이 선박들은 한국 경제 발전의 산 증인으로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이들은 큰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해 국가 경제의 발판을 마련해온 효자로 평가받는다”면서 “IMF도 견디며 묵묵히 일을 수행해왔지만 연령과 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해 아쉽게 해체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노후 선박은 감가상각과 선박금융 상환이 끝났기 때문에 관리만 잘 됐다면 영업마진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업황 악화로 유지비용을 감당키 어려워지면서 폐선 결정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조선·해운 시황 전문기관인 클락슨은 지난해 건화물선 해체량이 93척(502만 DWT)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중 절반 이상인 58척(241만 DWT)이 지난해 12월에 모두 해체됐다. 경기 침체를 이기지 못하고 해운업체들이 노후선박을 대부분 해체한 것이다. 해체된 선박들은 고철로 팔려나간다. 고철 가격은 순수 고철 무게 단위인 1LDT(경하배수량톤) 단위로 매겨진다. 한때 1LDT당 700달러 이상이었던 고철가격도 현재는 1LDT당 230달러 안팎으로 떨어졌다. 산업역군 벌크선이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를 넘지 못하고 ‘헐값’ 고철로 고단한 일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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