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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원로작가 박완서(78·사진)씨는 몇 해 전 한 출판인으로부터 어떤 교회의 출판물에서 오려왔다는 짤막한 기사를 받았다. 거기엔 6·25 전쟁때 일어난 실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때는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유엔군쪽 전세가 불리해져 국군은 후퇴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산달이 다 되어 배가 부른 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지요. 그러나 찾는 집에 이르기 전에 진통이 시작되어 어느 다리 밑에서 아기를 낳은 산모는 동사하고 말았고, 어머니옷에 몇 겹으로 둘둘 말린 갓난 아기는 근처를 지나가는 미군 장교의 눈에 띄어 입양까지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읽은 감동이 자신 안에서 씨가 되어 천천히 이야기를 키워가고 있음을 알아챈 박씨는 자신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던 할머니와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지었으니 최근 출간된 동화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어린이작가정신)가 그것이다. 대충 읽고 버리기 일쑤인 교회 출판물을 허투루 생각하지 않은 원로작가의 혜안이 탄생시킨 작품인 것이다.
주인공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미국으로 떠난 후 외할머니 품에서 자란 초등학교 5학년 복동이다. 어느날 방학을 맞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된 복동이는 처음 만난 아버지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필리핀계 여자와 결혼해 새 가족을 형성하고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복동이는 학교를 찾아온 한국계 입양아 출신의 브라운 박사가 들려준 기막힌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열게 된다. 6.25 전쟁때 벌판에 누워 혼자 울고 있었던 갓난아이가 바로 브라운 박사였던 것이다.
“나 같은 게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하면서 살 때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하면서 사는 세상이 같을 수가 없죠”라고 쓴 박씨는 동화를 짓는 동안 막내 손자의 도움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복동이의 미국생활을 묘사하는 데도 그 애의 도움이 컸고 그 애가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와서 쓴 글짓기를 그대로 따다가 복동이의 어느 행복한 하루를 구성하는 데 써먹기도 했지요.”
글을 쓰는 내내 손자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손자 입에 맞는 음식을 궁리하고 장만할 때와 같은 행복감을 느꼈다는 그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고 감사하면서 신나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