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자식이 그럽디다…시 좀 쉽게 쓰라고”

김지하 “자식이 그럽디다…시 좀 쉽게 쓰라고”

기사승인 2009-05-06 18:07:00

[쿠키 문화]
“자식이 둘 있는데 촛불 시위가 열리던 작년에 내게 한 방 먹이더군요. 시 좀 쉽고 재미있게 쓸 수는 없는가라고. 듣고 보니 국문학자 조동일 형(계명대 석좌 교수)이 나더러 ‘어수룩하고 못난 시 좀 쓸 수 없느냐’고 주문했던 생각이 나더군요.”

전작 시집 ‘못난 시들’(도서출판 이룸)을 펴낸 시인 김지하(68)씨의 목소리는 카랑카랑 했다. 6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나 같은 늙다리가 연애감정 같은 걸 드러내고…. 시가 야하게 변한 것 같아. 못난 거지 뭐”라고 웃어보였다.
시상이 떠오른 건 작년 5월, 연일 촛불 시위가 열리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였다. 그래서 시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도 촛불이다.

“지난해 요맘때 촛불을 횃불로 바꾸려는 자들이 있었지요. 촛불은 우리 할머니들이 소망을 빌며 켜놓던 것인데 횃불이나 숯불은 의미가 다르지요. 숯불이란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한 자들이 고기나 구워먹으려고 피우는 것이죠.”

그는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을 든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강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한 달 이상 계속된 촛불 시위는 지도자도, 명령자도, 책임자도 없었는데 비폭력이었고 질서도 유지되었지요. 그들은 어린 학생과 아줌마와 노인들이었는데 그들 사회적 소외계층이 촛불을 들었다는 점에서 개벽에 가까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역사는 늘 중년전문집단인 남성들이 주체였는데 그게 바뀐 것이죠.”

한마디로 못난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했다는 것인데, 요즘 세월은 못난 체하는 것도 잘난 체하는 걸로 오해받기 쉬운 시대여서 못나기도 어려운 세월이 아니던가. 그런 속내를 그는 이렇게 시로 그려냈다.

“나는/촛불도 아니다//나는/시청 근처에도 없는/변두리/꼰대//나는 디지털도 엠비도 노사모도 아닌/신좌파 신우파/환경연합도 아닌//그저 이름 없는/직업도 없는//한 아날로그 꼰대//갈 곳 없다/설 곳 없다/돌아갈 곳 없다//적도에 눈 내리는/북극 녹아내리는//개벽만 기다리는//청소년도 여성도 아닌/그저 그렇고 그런//한/중년 외톨이”(‘못난 시 102’ 전문)

이번 시집은 바로 외톨이 시인이 못나서 역사가 된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 과거처럼 시대적 담론을 담으려고 애쓰지 않고 산책을 하거나, 우체국을 가거나, 자주 못 보는 아내, 유학 간 아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철훈 기자, 사진= 윤여홍 기자
chjung@kmib.co.kr
정철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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