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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경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8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삼구(64)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석유화학부문 회장을 맡고 있는 박찬구(61)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동반퇴진한다고 발표했다. 그룹 회장은 항공 부문 부회장을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 박찬법 부회장이 추대됐다.
그룹 측은 최고경영층이 오너 일가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우건설 인수와 이후 불거진 유동성 위기 수습과정에서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이 갈등을 빚어왔고, 결국 동반퇴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강하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형제의 난'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금호아시아나는 이날 오전 그룹 경영위원회를 열어 대주주 가계간 협의내용을 토대로 박찬법 항공무분 부회장을 5대 그룹회장으로 추대하고 박삼구회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기로 했다. 또 이날 열린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박찬구 대표이사 해임안을 가결함에 따라 박찬구 회장은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게 됐다.
박삼구 회장은 회견에서 "그동안 4가계는 그룹 계열사 주식에 대해 균등 출자하고 4가계가 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결속해왔다"며 "그러나 최근 박찬구 회장이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하는 등 그룹의 정상 운영에 지장을 초래하고 그룹 경영의 근간을 뒤흔들어 그룹의 발전과 장래를 위해 해임조치를 단행하게 됐다"고 배경을 밝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국내 기업 중 두산그룹과 함께 형제 경영권 승계라는 독특한 전통을 이어왔다.
창업주인 고(故) 박인천 회장에 이어 장남인 고 박성용 회장, 차남인 고 박정구 회장을 거쳐 현재 3남인 박삼구 회장이 4대 회장을 맡고 있다. 금호가 형제들은 공교롭게 만 65세에 경영권 승계가 이뤄져 전통대로라면 내년쯤 박삼구 회장이 물러나고 4남인 박찬구 석유화학부문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에 박삼구·찬구 회장이 동시에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에 경영을 맡기기로 하면서 형제간 경영권 승계 전통이 깨졌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형제간의 불협화음은 최근 박찬구 회장 부자가 금호산업 지분을 팔고 석유화학 지분을 사들이면서 불거졌다. 박찬구 회장과 아들 박준경 부장은 보유 중이던 금호산업 지분을 모두 팔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18.20%로 늘렸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 지분은 5.30%로 변동이 없었고, 아들인 박세창 상무만 4.71%에서 6.47%로 지분을 더 사들였다.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아시아나항공 부장도 10.01%에서 11.76%로 늘렸다.
과거 박삼구·박찬구 회장과 조카 박철완 부장이 각각 10.1%씩 금호석유화학의 주식을 보유하는 이른바 '황금 비율'이 깨진 것이다. 최근 지분 변동과 관련, 대우건설 인수합병 실패에 따른 형제 갈등설이 제기됐고 박찬구 회장이 그룹에서 알짜배기인 석유화학을 계열분리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찬구 회장 측이 박삼구 회장 측에 대해 대우건설 인수 실패의 책임을 추궁한다는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이 같은 형제간 갈등은 지난 13일 경기 화성 선영에서 열렸던 고 박정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7주기 추모행사에서도 감지됐다. 추모식에 가장 늦게 도착했던 박찬구 회장은 다른 가족들에 앞서 가장 먼저 선영을 떠났고 두 형제는 추모식 내내 별 다른 대화를 하지 않고 추모식이 끝난 뒤에도 인사 없이 헤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태원준 강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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