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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연극인 손숙(65)에게 ‘밤으로의 긴 여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1962년 이 작품이 고 이해랑 선생의 연출로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초연될 때 손숙은 꿈많은 여고생이었다. 문학소녀였던 그는 연극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그날 이후 연극에 빠져들었다. 오늘날 연극배우 손숙을 있게 해준 작품이 바로 ‘밤으로의 긴 여로’인 셈이다.
6일 손숙은 “그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문학과는 너무 다른 직접적인 감동이었기 때문”이라면서 “고3이 됐는데도 머릿속에서는 연극 생각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처음 본 연극이 당대의 대표작이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었죠. 제 연극계 최고 스승인 이해랑 선생님과의 만남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인연이 많은 작품이어서 언젠가는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때가 왔네요.”
손숙은 18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막 오르는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어머니 메어리 역을 맡는다. 유진 오닐의 자전적인 희곡인 ‘밤으로의 긴 여로’는 사랑과 증오로 얼룩진 한 가족사를 그린 작품으로, 메어리는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고 약물에 의존하며 꿈 많던 여학생 시절을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이번 무대는 손숙에게 여러모로 각별하다. 이해랑 연출이 가장 아꼈던 여배우로 꼽히는 그가 고인의 20주기 추모공연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게 됐고, 또 한 명의 스승인 임영웅 연출이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았기 때문이다. “연극계의 두 스승인 이해랑 임영웅 선생님, 그리고 명동예술극장이라는 무대까지 정말 많은 의미가 있어요. 만만치 않은 작품이지만 출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어요.”
63년부터 연극을 시작해 어느덧 연기 인생 50주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는 12월 공연 예정인 ‘가을 소나타’까지 올해에만 네 작품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어쩌면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무대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곳인데 이를 견딜 힘이 없으면 그만 놓아야죠.”
한때 연극에 대한 회의가 들어 대학로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는 손숙은 요즘 연극을 대하는 태도가 더 애틋해졌다. “1∼2년 전부터는 연극이 눈물겹게 느껴졌어요.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감동을 느끼고 희망을 찾는다면 보람이 있어요. 그때부터 자유롭고 편안해졌어요. 이 시대에도 이 공연을 보고 나처럼 인생을 바꾸는 관객이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