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2006년 2월 임모씨는 같은 음식점에서 일하던 이모씨에게 "부모께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라고 소개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임씨는 그해 4월까지 모두 4차례 이씨와 성관계를 가졌다. 하지만 임씨는 이씨와 결혼하지 않았고 결국 형법상 혼인빙자간음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임씨는 지난해 6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속임수로 음란한 행위를 상습적으로 하지 않은 부녀자를 간음한 자'를 처벌토록 한 형법 304조가 헌법상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고 평등원칙에도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10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혼인빙자간음죄의 위헌 여부를 놓고 열린 공개변론은 남녀평등 의식이 강화되고 성개방 풍조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까지 인정돼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헌재는 2002년에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해 7대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혼인빙자간음죄 처벌 조항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이를 혼인을 빙자한 부녀자 간음행위를 어느 정도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밝혔었다.
청구인측 황병일 변호사는 "형법이 개인의 사생활까지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세계적으로 남녀의 자유의사에 의한 성관계 처벌 입법례도 거의 없고, 이는 전근대적인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부도 "혼인빙자간음죄는 여성을 의사결정의 주체가 아닌 종속적 존재인 성적 예속물로 보고 있다"면서 "여성을 비하하고 정조, 순결을 우선시 하는 관념에 기초한 것"이라며 재판부에 위헌 의견을 냈다.
반면 법무부측 대리인인 이계한 검사는 "혼인빙자간음죄로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제한되지만 이를 통해 기본권을 침해한다거나 평등원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일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여전히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1969년 혼인빙자간음죄 처벌조항이 폐지됐다. 일본과 일부 주를 제외한 미국은 혼인빙자간음죄를 처벌하는 규정이 따로 없다. 반면 쿠바 터키 루마니아는 형법에 혼인빙자간음죄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한편 법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형법 개정연구회는 혼음빙자간음죄를 삭제한 형법 개정시안을 마련해 주목된다. 개정시안은 혼인 여부는 여성 또한 자유롭게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형법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간통죄도 "부부관계는 민법상 계약관계이므로 손해배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강간죄 피해자에 남성도 포함시킬 것도 주문했다. 연구회는 11일 개정시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법무부는 이를 참고해 최종 개정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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