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학자가 도킨스에게 답하다

한 신학자가 도킨스에게 답하다

기사승인 2009-10-21 16:43:00
[쿠키 문화]‘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부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한 신학자의 응답)’이라는 책이 21일 도서출판 동연에서 나왔다. 저자는 김기석(신부)성공회대 교수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과학자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신은 없다, 모든 종교는 틀렸다”고 말하는 논리에 대해 응답하고 있다. 도킨스는 자신의 책에서 수많은 과학적 논증을 펼치며 신을 부정한다. 신을 부정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찾는 일이라고 강변한다. 그래서 “인간을 주목하라”, “신의 존재를 의심하라”고 말한다.

세계적인 반향은 무척 컸다. ‘도킨스의 신’, ‘도킨스의 망상’이라는 책이 나와서 도킨스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종교를 없애자는 그의 주장과는 다르게 ‘도킨스 광신자’가 나타날 정도니까.

이와 관련, 김 교수는 도킨스의 목소리가 과학 지성의 어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마치 전체주의의 선전선동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도킨스가 밈(meme) 개념을 알렸던 책 ‘이기적 유전자’의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말투가 전도됐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선전선동의 말투는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전체주의든 민주주의든, 제국주의든 민족주의든, 그 어떤 가치를 위한 것일지라도 언제나 지성을 갉아먹을 수 있는 위험한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저자는 신학자라고 자신을 밝히며 도킨스의 과학적인 견해를 두고 논쟁하는 것에는 한 발 물러선다. 물론 ‘과학과 종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과학에 대한 관심의 끈을 한시도 놓아 본 적이 없지만 여하튼 비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세계적인 생물학자의 학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는 없다고 한다. 도킨스가 종교를 재단하듯 하는 태도와는 다르다. 하지만 어떤 과학자가 종교에 대해 견해 표명이 아니라 완전히 사형 선고하듯 내리는 판정에는 뒷짐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며 글을 쓰는 이유를 밝힌다.

저자는 기독교에 속한 공동체의 목회자이지만, 한편으로는 진화론을 생명 현상에 대한 올바른 과학적 설명으로 받아들인다. 오히려 성서를 문자주의로 해석하는 창조과학회의 논지에 명백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도킨스의 논리에 대해 비평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킨스의 종교 비판을 상당히 수긍한다. 그런 점에서 도킨스의 논지보다 더 급진적인 주장일지도 모른다고 밝힌다.

도킨스의 종교 비판 중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적인 종교 형태에 대한 비판에는 동의하지만 종교의 본질에 대한, “종교가 모든 인류 악한 행위의 원흉”이라는 비판은 수긍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지 반론을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학자로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도킨스가 강변하는 과학과 종교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적과의 동침’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에 반기를 들며, “양자는 하나의 진리를 향한 인간 정신의 두 갈래 여정”이라고 말한다.

진정 신은 망상인가?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에 필적할 만한 논리로 도킨스는 신을 부정한다. “신이 없어도 인간은 열정적이고 영적일 수 있다”는 말에 과학적 근거를 대기에 글의 파괴력이 엄청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킨스가 제기하는 반종교 논쟁의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신학적 견해를 밝힌다. 종교가 추구하는 본질, 과학과 종교의 관계, 신에 관한 이해, 우주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미 등이다.

먼저 신의 존재 유무를 판별하는 도킨스의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는 단지 가설일 뿐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신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는 과학으로 해명할 논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도킨스는 정통적인 신 증명론의 허점을 비판하며 자신의 신이 없다는 생각을 논증해 보인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도킨스가 예로 제시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증명론은 신 존재의 유무에 관한 논증이라기보다 신을 믿는 이유의 일관성과 합리성을 논증한 것이라고 맥그라스 교수의 주장을 반론으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신 증명론이나 신 부재증명론은 단지 그것을 믿는 이유나 믿지 않는 이유를 강화하는 논리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신이라는 개념 자체는 인간의 논리나 언어를 통해 증명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은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며, 믿는 자에게는 세계 안과 밖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반론한다.

신은 불변의 존재인가?

저자는 도킨스가 ‘망상’이라고 지칭하는 신,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말하는 신은 그야말로 ‘오래된 신’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신은 불변의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한국 교회, 특히 개신교의 근본주의 신앙을 비판하는 신학자다. 도킨스와 종교 비판에서는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도킨스의 유신론 비판은 종교의 본질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종교의 피상적이고 현상적인 부분에 집착한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버제스 혈암에서 나온 캄브리아 중기의 생명의 모습처럼, 도킨스가 말하는 신은 박제화된 신이라는 것이다. 성서를 맥락(Context)에서 해석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해석한 것이 원인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하나의 종으로부터 오늘날의 풍성하고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고 가르치듯, 마찬가지로 신에 대한 개념도 인류의 최초의 생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발달되어 왔다고 한다. 신에 대한 개념과 신앙이 인류 문화를 따라 발달해 왔다는 성서 해석학적인 논지를 들어서 설명하며 과연 신은 우리 머릿속에만 존재하는가 하는 반문을 제기한다. 원시 호미니들이 느꼈을 자연에 대한 공포와 경외감이 최초의 시작이라면, 지금의 신은 인류 문화와 역사를 통해 발달해 왔다는 것이다.

종교가 모든 인류 악한 행위의 원흉인가?

도킨스는 인간의 존엄성이 “신 앞에서 무너졌다”고 말하며, 역사상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살육을 예로 든다.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 9·11, 런던 폭탄 테러, 인도·파키스탄 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이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사악한 행위라고 한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라는 옷을 입고 저질러진 끔찍한 일들은 열거하기도 벅차다. 그러나 저자는 “종교가 모든 악한 행위의 원흉이다”는 한 가지 생각은 상황적 진리, ‘자신만의 진리’는 될지언정 ‘보편적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진다고 반박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북아일랜드 분쟁을 예로 든다. 북아일랜드는 “당신은 가톨릭 무신론자요, 아니면 프로테스탄트 무신론자요?”라는 농담처럼 심지어 동물과 사물조차 종교적인 잣대로 나누는 극단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영국의 아일랜드 침략과 지배의 불행한 유산일 따름이며, 그 동기는 종교가 아니라 경제적 탐욕이라고 말한다.

도킨스가 열거한 목록 중에는 종교적인 동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제1세계의 탐욕스런 식민지 지배와 세계 패권을 향한 야욕이 바로 비극의 씨앗이라고 직시한다. ‘제국의 신’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신이라는 것이다. 단지 종교인들 때문에 인도-파키스탄 분리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 북아일랜드 분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영제국의 식민지 통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다고 한다.

도킨스는 제1세계에 속한 학자다. 또한 이성을 가장 우선하는 가치로 여기는 지성인으로서 자신이 열거한 불행한 사건들의 원인을 언급하려면 자신이 속한 공동체(국가, 지식인 사회)가 연루된 점에 대해 말해야 한다. 하지만 도킨스는 사회적인 맥락을 등한시한다.

저자는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이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슬람의 교리에 대해 언급한다. 그 말대로라면 알라, 하나님은 폭군일 따름이다. 하지만 성공회대학교에서 무슬림 여성 학자의 강연을 소개하며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불식한다. 강사로 나선 무슬림 여성 학자는 이 말은 터키에서 지낼 때는 듣도 보도 못한 말로 한국에서 생활하며 처음으로 들었다고 한다. 그녀가 “믿음이란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칼을 가지고 마음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라 말한 예로 곡해된 이슬람 세계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 테러의 원인을 ‘성질 고약한 알라’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 자신의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극한에서 행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도킨스가 ‘폭군’이라고 말한 신, 이에 대한 반론으로 모세의 출애굽 사건을 예로 든다. 성서학자들이 고대 기독교의 기원으로 삼은 사건이다. 저자는 이집트의 압제 하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신음하던 백성을 이스라엘로 이끌어낸 출애굽 사건의 본질은 ‘인간(노예)을 역사의 주체로 세우는 해방’이었다고 말하며, 진정한 신은 폭군이 아니라 ‘해방자’라고 한다. 하나님은 초월자,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민중들의 희망과 좌절, 기쁨과 고통, 삶에 대한 환호와 신음에 응답하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도킨스뿐 아니라 여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해석은 고대 시대의 상황을 보지 않고 문자적으로 성서를 해석하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과학과 종교, 적과의 동침인가?

도킨스는 종교에 적대적이다. 역사상 벌어졌던 과학에 대한 종교의 탄압에 ‘이를 간다’. 코페르니쿠스 시대에 지동설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였다고 말한다. 종교의 힘이 그만큼 컸던 시대다. 하지만 도킨스의 말 그대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논쟁을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저자는 도킨스가 이곳에서도 사회-경제적인 맥락을 보지 않고, 사건 자체로만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그 시대 사회적 주도세력인 종교 권력가들과 신흥세력인 중산층 지식인(과학자)이 종교와 과학의 외피를 입고 한판 붙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코페르니쿠스는 무신론자가 아니었으며, 수많은 성서 해석에 관련된 책을 출판하였다.

저자는 또한 유명한 사무엘 윌버포스 주교와 토마스 헉슬리 교수의 ‘진화론 논쟁’도 언급한다. 다윈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발표를 끝낸 헉슬리에게 “당신의 말대로 인간이 원숭이 선조로부터 진화했다면, 당신의 원숭이 조상은 부계 쪽이요, 아니면 모계 쪽이요?” 하는 비아냥거림에 “인간이 지닌 특권인 지성을 이런 식으로 사용한다면 기꺼이 원숭이 조상을 택하겠다”고 응수했던 이야기다. 그러나 윌버포스 주교의 반응이 그 당시 신학계의 대표적인 반응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진화론이 발표되자 영국의 많은 신학자와 성직자들이 반겼다고 한다. 다소 희화화 되어 전해진 이 논쟁의 배경에는 과학에서의 기존 성직자 그룹과 신흥 과학자 그룹 간의 주도권 다툼의 성격이 깔려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사회적 맥락을 무시하면 제대로 된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다. 저자는 종교와 과학이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관계라는 시각에 대해 최근의 신학 경향인 이언 바버와 존 폴킹혼 등의 신학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저자는 종교가 사라지면 이 세상의 사악함도 거의 대부분 사라지리라는 도킨스의 ‘희망’에 ‘망상’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종교와 과학이 연대해야 한다고 한다. 도킨스의 “종교 극단주의가 아니라 종교 자체를 비난해야 한다. 즉 끔찍하게 왜곡된 종교가 아니라 정상적인 종교 말이다”는 주장에 대해 도킨스가 전선을 잘못 긋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선은 무신론자 대 유신론자가 아니라 극단주의자(근본주의자) 대 온건주의자로 그어야 한다고. 과학자들 절반 이상이 무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듯, 종교에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으며, 종교가 사악한 것이 아니라 ‘좋은 놈’과 ‘나쁜 놈’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종교를 없애야 좋은 세상이 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종교를 세워야 하고, 참된 과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과 종교는 다르지 않고 결국 하나의 진리를 향한 인간 정신의 두 갈래 여정”이라고 주장한다.

김기석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교수는 성공회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선교 및 농촌선교 사역을 하다가 영국 버밍엄 대학교(Univ. Birmingham)에서 석사학위와 같은 학교에서 ‘한국적 상황에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천=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창교 기자 ?cgyo@kmib.co.kr
정창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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