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순웅 “염쟁이 유씨가 내인생 바꿔…배우 유해진과 못난이그룹”

유순웅 “염쟁이 유씨가 내인생 바꿔…배우 유해진과 못난이그룹”

기사승인 2009-11-30 2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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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배우 유순웅'은 잔뜩 움츠러들어 보였다. 지난 24일 대학로 예술극장 나무와 물의 공연장 안에서 본 그는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감기 걸려서 최상의 모습을 못 보여주면 관객들에게 그렇게 죄송할 수 없어요”

프로다운 발언. 과연 연극 ‘염쟁이 유씨(氏)’만으로 공연 1000회를 눈앞에 둔 예인 다웠다.

2006년 국립극장 주최 제3회 시선 집중 ‘배우전’ 개막작으로 선정된 ‘염쟁이 유씨(氏)’는 3년여에 걸친 롱런을 기록 중이다. 염을 업으로 하는 염쟁이를 통해 ‘죽음’이란 무거운 소재를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1인극으로 유순웅씨가
1회부터 계속 맡아왔다. 지금까지 15만명의 관객이 찾았고 올 연말 안에 1000회를 달성한다. 내년 상반기에 미국 공연도 예상돼있다.

- ‘염쟁이 유씨’는 다른 작품보다 남다를 것 같다.

“이 작품을 하면서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이 연극을 통해 ‘배우 유순웅’을 알릴 수 있었지요.”



-1000회 공연을 앞둔 심정이 어떤가?

“1000회를 목표로 공연했던 건 아니고 열심히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사실 중간에 많이 힘들어서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도 몇 번 했었는데 관객들이 계속 찾아와 주셔서 가능했죠. 배우로서 하나의 공연을 1000번 한다는 거 자체가 무척 영광스러운 거잖아요.”

- 공연 보니까 배우 그만 두고 염쟁이 해도 되겠더라.

“처음 염 배울 때 농담 삼아 그랬어요. 이 연극 망해도 염쟁이 하면 되니까 걱정 없다고요. 허허. 사실 연극에서 보여드리는 것은 염의 전 과정에 절반도 안돼요. 지금은 연극 속에 나오는 것만 하다 보니까 다 잊어버렸는데, 염하는 거 자체가 언어 없는 연극이에요. 진지하고 의미 있는 일이죠.”

- 어떻게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선택하게 됐나?

“저는 한국인의 정서가 진하게 묻어나는 가장 한국적인 연극을 하고 싶었어요. 가장 보편적인 주제는 사랑일 테고 그 다음이 죽음 아닐까요? 그런데 죽음이란 게 선입관 때문에 대중화에 어려움이 있어서 섣불리 선택하지 못하거든요. 그런 것을 보편화 시킨다면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 기억에 남는 관객 있나?

“암환자들이 이 작품 보면서 ‘얼마나 살지 모르겠지만 내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그 분들 덕분에 공연을 계속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 연극 시작할 때 부모님이 반대하셨을 것 같다.

“연극한지 10년이 될 때 까지 부모가 보러 오신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노골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적극적인 지지도 아니었어요. 어느 날 부모님이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아버지가 딱 한마디 하셨죠.‘네가 하는 게 이런 거냐?’그 뒤에 이 작품(염쟁이 유씨)이 유명해 졌는데 아버지는 그걸 못 보고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이걸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연극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서울 올라오기 전에 충북지역에서 연극을 했어요.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이 없어서 많이 고민했죠.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싶어요. 그러다 공연 하고 나면 그게 일주일을 못 가요. 또 하고 싶어서. 마약 같은 거예요.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창작이 힘들어서 고통스러운 적은 많았지만 그만둬야지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 혹시 성형수술을 생각한 적은 없나?

“0.1 %도 없었어요. 내 얼굴에 대한 자부심은 없어도 자긍심은 있어요. 못생긴 게 자랑스러워요. 어려서부터 늘 못생겼다고 자랑하고 다녔어요. 제가 참 못생겼죠? 20대 때는 범죄자로 오인 받고 하루에 5~6번 씩 검문 받았어요. 저는 예전부터 후배들한테 그랬어요. 우리가 못생긴 것을 장점으로 살릴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우리처럼 연기 잘하고 개성 있게 생긴 배우들이 뜰
날이 반드시 온다 했는데 결국 왔잖아요. 하하.”

-그러고 보니 ‘영화배우 유해진’과 많이 닮았다.

“해진이가 고향(청주) 후배에요. 같이 연극을 했죠. 그 친구도 우리 못생긴 그룹 중 하나였어요. 반드시 뜬다 그러더니 정말 뜨러라고요. 6~70 되신 어른들은 보는 눈이 어두워져서 제가 유해진인 줄 알아요. 하하하. 공연 끝나면 부부가 싸워요. 그 사람 맞다니까, 아니라니까 하면서. 저는 그렇게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닮았다고 하니까. 허허.”

- 연기는 언제까지 할 건가?

“죽을 때 까지요. 예전에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라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죽을 때까지 연기하다 무대에서 삶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 했어요.”



- 다음 작품은 뭔가?

“1인극은 아니고 상대방과 호흡할 수 있는 연극을 해야겠다는 것만 결정 됐어요. 겨울에 초고가 나올거고 내년 봄쯤 배우가 결정될 것 같아요. 아마 가을쯤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고향인 청주에서 초연을 할 거예요.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좋은 연극 보러 내려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지역 문화가 꽃 폈으면 좋겠어요.”

- 연극배우를 꿈꾸는 학생들이나 지금 이 순간에도 연극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연극이 좋아하는 일인지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하는 거라면 5분짜리 연극이든 10분짜리 연극이든, 관객이 할아버지만 있다고 해도 기쁘게 할 수 있죠. 그것에 만족하고 행복해 할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배우가 정말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진정한 배우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죠.”

그를 만나러 가면서 기자는 내심 고민했다. 그의 카리스마에 눌릴까봐. 그러나 인간 유순웅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자상했다. 무딘 게 아니라.

국민일보 쿠키뉴스 인턴 정민우 기자 jeongmw12@naver.com,장일암 사진작가 stephen61@naver.com

(인턴제휴 아나운서 아카데미 '아나레슨' http://www.analesson.com/ )

고세욱 기자
jeongmw12@naver.com
고세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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