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외환은 44년 우정, 악연되나

현대-외환은 44년 우정, 악연되나

기사승인 2010-07-11 21:44:01
한국 경제사(史)에서 가장 격동적이었던 시기를 함께 넘었다. 두 차례 석유파동과 외환위기, 서슬퍼런 군부 독재로 여러 기업들이 넘어졌어도 이들은 굳건히 버텨냈다.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은 44년째 부침을 함께 겪어온 파트너였다. 그러나 지난해 해운산업이 고꾸라지며 현대그룹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실적이 악화되자 주채권은행(옛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이 지난 6월 재무개선약정을 맺기로 결정하면서 위기를 맞게 됐다.

인연은 1967년 시작됐다. 정부는 빈약했던 국내 금융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한국은행의 외환업무를 독립시켜 외환은행을 설립한다. 외환 업무와 더불어 일반 은행 업무도 볼 수 있었지만 자본금 100억원짜리 은행과 거래하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당시 정치권과 금융계에서는 “빈약한 자본금을 가진 외환은행이 대외 경쟁을 벌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때 국내 1위 기업이었던 현대그룹이 손을 내밀었다.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은 이때부터 파트너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77년 정부는 대기업에 대한 효율적인 여신관리를 위해 주채권은행 제도를 시행한다. 이때 외환은행은 영업 1부 내에 현대그룹 전담반을 설치한다. 15명의 직원을 뽑아 현대그룹 관련 업무만 처리하도록 했다. 현대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87년 범양상선 박건식 회장 투신자살로 인한 해운산업의 몰락위기는 현대와 외환은행에 동시에 닥친 첫 위기로 불린다. 당시 현대상선을 포함한 해운업체들은 은행 부채만 3조 2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경영 적자에 허덕였다. 정부는 해운 6개사의 주채권은행에 대해 1조원의 특별융자를 제공한다. 현대상선과 이를 담당했던 외환은행 역시 정부 지원 덕분에 연간 3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됐던 최대 위기를 함께 견뎌낸다.

흥망성쇠의 배를 함께 탄 이들의 파트너십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처음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91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부의 무리한 세수 추징을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이때 외환은행은 시중 은행에 긴급 전문을 보내고 “현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긴급 대출을 최대한 억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갈등은 92년 대선에서 정 명예회장이 낙선한 이후에도 지속됐지만 파트너십은 근근히 유지됐다. 2000년대 들어 현대건설의 부도 및 현대 계열사들의 분리가 이어졌어도 이들은 모두 외환은행과의 주거래 관계를 끊지 않았다.

2004년도 기억할 만한 해였다. 이 해 금융감독원은 ‘LG카드 사태’때 주채권은행이 제일은행이 제 역할을 못했던 사실을 계기로 주채권은행에 대한 일제 점검에 나섰다. 당시 외환은행은 97년 외환위기 여파로 2003년 사모펀드 론스타에 팔려나간 이후였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외환은행과의 관계를 끊으려 했지만 외환은행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주채권은행으로서의 관계를 이어가도록 했다”고 말했다

미운정 고운정이 든 이들의 관계는 그러나 지난 6월 이후 화합할 수 없는 원수 수준으로 돌아섰다. 약정을 맺으면 신규 대출이 어려울 뿐 아니라 각종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대건설 재인수를 추진 중인 현대그룹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방안이다. 현대그룹은 “외환은행의 태동부터 함께했는데도 (은행측이) 너무 가혹한 조건을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한다. 외환은행 측은 “원칙을 무시한 채 현대그룹을 무제한 지원할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44년 인연이 자칫 악연으로 끝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신창호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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