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승자박 풀고 우리 술에 힘 실어야

[기자수첩] 자승자박 풀고 우리 술에 힘 실어야

기사승인 2017-10-06 05:00:00

육상선수 기록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당일 몸 상태에 따라 기록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출발선상은 동일하다. 최소한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주가 내수와 세계시장 모두에서 치이고 있다. 일본 술 사케가 저만치 앞서가는 와중에도, 정부는 전통주에 채워진 족쇄를 풀 생각이 없다.

일본의 대표적인 술로 알려진 사케와 우리나라의 막걸리 등 전통주는 모두 내수가 부진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민·관이 합심해 수출로 활로를 뚫은 반면 우리나라 전통주는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규제에 갇혀 경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자국 전통주인 사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자 일본주류 수출촉진연결회의를 설치하고 수출로 시선을 돌렸다. 변화된 시장상황에서 억지로 개입하는 것보다는 아직 사케를 접하지 못한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의회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사케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가별 수출전략을 세우고 세금 혜택을 지원했다. 여기에 일식당과 협업을 통해 일식과 마시는 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사케의 고급화를 진행했다.

이러한 전략은 제대로 먹혔다. 의회 설치 직후인 2011년 이후 7년 연속 수출 최대치를 경신한 사케는 지난해 1566억원을 달성했다.

일본의 성공적인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 전통주는 내수와 수출 어디에서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제품 품질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 규제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저도주 트렌드와 맞물려 잇달아 선보였던 이른바 바나나 막걸리등도 규제에 얽혀 팽창하지 못했다. 원 재료에 막걸리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향이나 색소를 첨가할 경우 주세법상 기타주류로 분리돼 다른 주세체계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반적인 막걸리는 탁주로 5% 세금이 적용되지만 향이 첨가될 경우 기타주류로 구분돼 30% 세율이 적용된다.

유통경로도 달라진다. 탁주와 약주, 청주 등은 특정주류도매업자가 판매하며 기타주류는 종합주류도매상이 취급하게 된다. 소주·맥주 등을 취급하는 종합주류도매상 입장에서는 규모가 크지 않은 기타주류를 일부러 취급할 이유가 없다.

전통주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제품을 개발할 의욕 사라지게 된다. 첨가와 변형을 통해 기타주류로 넘어가는 순간 25%의 세금이 추가로 붙기 때문이다. 이는 원가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 반감을 사기에도 충분하다.

따라서 전통주 업계에서는 현실적인 유통채널 확보를 위해 향이 첨가된 막걸리 등을 특정주류도매업자가 판매할 수 있도록 하거나, 주세법 개정을 통해 탁주로 구분해야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여전히 계류 중인 상태다.

수출 역시 술 가격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탓에 가격경쟁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원료와 포장·재료비·광고·영업비용이 포함된 원가에 주세가 부과되다보니 고급 원료를 사용했다간 세금폭탄을 맞게 된다.

일본은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를 적용하고 있다. 고급 원료를 사용하더라도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다면 적용되는 세금은 낮다. 원료가 비싸 가격이 높은 것이 아니라, 세금이 과도해 제품가격이 올라가는 이상한 결과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종량세 전환을 반대하는 입장도 일리가 있다. 단순히 알코올 도수만으로 세금을 책정하다보면 국내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융통성 없는 단편적인 주장이다. 종량세 전환과 첨가물로 인한 기타주류 전환을 완화해주는 것을 탁주와 청주 등 전통주에 한해 적용하면 될 일이다.

훌륭한 일본의 사례가 있다. ‘안 된다는 전제를 깔아두고 이유를 맞추기 보다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충분히 검토하고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전통이라는 단어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승자박의 수를 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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