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마(行馬)란 바둑에 있어 일정한 방식으로 돌을 착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두는 사람의 능력과 경험, 그리고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한 수를 내어주더라도 두 수를 벌 수 있고, 반대로 몽땅 말을 잃을 수도 있다. 오로지 두는 사람의 능력이다.
풀무원은 2년간의 남승우·이효율 각자 대표체제를 마무리하고 이효율 신임 총괄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33년간 풀무원을 이끌어온 남 전 대표이사는 정년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신임 대표는 이른바 ‘입사 1호 사원’으로 그간 남 전 대표와 함께 풀무원을 일궈온 창업공신이다. 33년간 일선에서 업무를 도맡아와 회사와 내부 사정, 시장 흐름을 꿰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업계와는 달리 식품업계는 유달리 오너일가에 의한 경영이 주를 이뤄왔다. 오너일가체제는 수직적 의사전달체계로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 시시각각 변하는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오너와 회사는 일원화돼있어 내·외부적인 이유로 오너가 휘청일 경우 회사 전체가 큰 타격을 입기도 한다. 이러한 오너리스크는 오너가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이상 뗄 수 없는 주홍글씨다.
푸르밀은 2007년 롯데로부터 분사해 유지해오던 전문경영인체제를 오너경영체제로 전환했다. 풀무원과는 정 반대의 행보다.
새로 선임된 신동환 신임 대표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조카이자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차남이다. 오너일가의 ‘적통’이며, 회사로서는 구원투수인 셈이다.
신 대표 앞에 놓인 상황은 녹록치 않다. 전통적인 사력(社歷)과는 달리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대표 제품은 ‘비피더스’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실적 또한 매년 감소하고 있다.
푸르밀의 영업이익은 2012년 115억원에서 2014년 97억원, 2016년 50억원으로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6년 영업이익은 1.8%에 불과해 191억원에 달하는 단기차입금의 이자비용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다.
푸르밀의 신 대표선임은 신제품 개발·마케팅보다는 기존 제품 판매를 유지·보수하는 기업적 성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선보인 ‘앤원’도 비피더스 이후 22년만에 선보이는 발효유 신제품이다.
사 측은 신 대표의 선임과 관련해 기능성 발효유 ‘N-1’ 출시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제품은 지난해 2월 출시된 제품으로 아직 성공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휘청이는 회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선수로서의 역량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셈이다.
이제 첫 걸음을 딛은 두 대표의 행마를 지금 예단하는 것은 이르다. 그러나 풀무원은 오너리스크를 벗어던짐으로써 한 수를 벌었고, 반대로 푸르밀은 한 수를 잃게 됐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