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밑그림이 필요하다. 밑그림은 연필로 대략적인 구도와 구상을 잡아 뼈대를 그려내는 준비과정이다. 밑그림 단계에서는 그림의 수정과 보안이 쉽고 간단하다. 반대로 밑그림 작업이 선행되지 않은 ‘그림’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발표한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에는 제조·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을 줄여나가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50% 감축, 재활용률을 두 배 늘리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단순히 ‘생산-사용-폐기-수거’ 단계에서 수거나 폐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사용 부문까지 관리해 쓰레기 발생을 줄이겠다는 의도가 담긴 그림이다.
그러나 가만 들여다보면 정부의 이 그림은 매우 거칠다. 큰 밑그림에는 2020년까지 모든 음료수 페트병을 무색으로 전환, 대형마트 비닐봉투 사용 금지, 커피전문점 등에 일회용컵을 반납할 경우 10% 금액을 돌려주는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부활 등이 담겨있다.
이미 대형마트 비닐봉투 전면 금지는 2010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다만 신선코너와 육류, 어류 판매코너에서 제공되는 속비닐을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비린내가 심한 어류나 물이 동반된 어패류, 흙 묻은 채소 등을 소비자들이 어떻게 구매해야하는지에 대한 대안은 판매처에 떠넘긴 상태다.
유색 페트병 전환 역시 애매하다. 한 기업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색을 이용한 시각적인 차별화다. 마케팅과 관련된 부분을 떼어놓고 생각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페트병 내부로 투과되는 빛이나 열 등을 차단해 제품의 변질을 막기 위해 색을 입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품의 특성에 따라 제도의 차등을 두지 않고 일괄적으로 강요하는 정책에 식음료 업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하라니까 하지만’ 딱히 마땅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제품 운송·보관 과정에서의 변질을 막기 위해서는 패키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정부에서도 사실상 마땅한 대책은 없는 눈치다.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 역시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2002년 시행됐다가 회수율이 30% 수준에 그치면서 2009년 폐지됐던 정책이다. 물론 실패했던 정책이라 하더라도 다른 정책과이시너지를 통해 유의미한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일회용컵 보증금 제도는 역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전 없는 사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제도에 따라 평균 3500원~5000원 정도 하는 커피 가격의 10%를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동전이 사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패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이를 강행하면서 첫 붓질에서부터 거친 선이 나오고 있다. 물론 그림이 올바르게 완성된다면야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생길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다듬어나갈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