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출신 정의용(鄭宜鎔·1888∼1956·고전면) 선생과 전남 화순출신 김금석(金今石·1891~?) 선생이 하동의 한 재야사학자의 노력으로 광복 73년 만에 정부포상을 받는다.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은 2009년과 2018년 2월 대전 국가기록원과 하동군 고전면사무소 문서고 등에서 고전면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정의용 선생 등 3명과 광주 부동교 3·1만세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른 김금석 선생 등 48명의 ‘판결문’과 ‘수형인명부’를 발굴해 정부에 포상을 청원했다.
정부포상을 받는 정의용(당시 31세) 선생은 고전면 성천리 출신으로, 고전면 주교(배다리)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19년 4월 고전면 주교 장날을 이용해 같은 마을의 박영묵‧이종인‧정상정‧정재기 등 33인과 함께 일신단을 조직하고, 4월 6일 주교리 장터에서 1000여 명의 장꾼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다음날 7일 성천리 지소마을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된 정의용 선생은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대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광주 3·1운동에 가담한 김금석(당시 28세) 선생은 당시 광주제중원(병원) 남자 간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께 광주 부동교(광주 동구 불로동과 남구 사동을 잇는 다리) 아래 작은 장터에서 김강‧김철‧최병준‧최한영 등과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광주농업학교 교사 및 학생 주민 1500여명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그는 이 운동으로 체포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4개월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재상 소장은 “고전면 3·1만세운동 가담자 발굴은 김희곤 자문위원과 함께 노력했으나 아직도 미포상자가 2명이 있고, 광주 3·1독립운동가는 33인이나 미포상 상태”라며 “정부에서는 조속한 조사를 통해 이분들에 대한 국가의 합당한 예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동=이영호 기자 hoh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