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이자벨(미셸 윌리엄스)은 버려진 인도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과 학교를 세우는 아동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길에 버려진 아이였던 제이도 친아들처럼 생각하며 애정을 쏟는다. 어느 날 세계적 미디어 그룹에서 이자벨의 활동을 후원하겠다는 연락이 온다. 그것도 거액이다. 조건은 반드시 이자벨이 뉴욕으로 와야 한다는 것. 제이의 생일을 앞둔 이자벨은 고민 끝에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향한다. 그룹 대표 테레사(줄리안 무어)는 당연하다는 듯 후원을 약속하며 그주에 있을 딸 결혼식에 이자벨을 초대한다. 찜찜한 마음으로 결혼식에 도착한 이자벨은 테레사의 남편 오스카(빌리 크루덥)과 두 사람의 딸 그레이스(애비 퀸)를 만나고 예상치 못했던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올바름 너머의 타협에 주목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우연은 그 자체로 폭탄이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파급 효과를 가졌지만, 영화는 차분하게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조율하고 수습과 대안 모색에 집중한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충분히 인정하고 되돌아볼 여유를 가진 40~50대 성숙한 어른들의 시련 극복 드라마에 가깝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대화와 이해로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유려하고 편안하게 펼쳐진다.
삶을 바쳐 자선 단체를 운영하는 이자벨과 거액의 기부를 쉽게 결정하는 테레사가 종교적 경지에 이른 성인(聖人)인 건 아니다. 그들 역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분노, 슬픔 등 격한 감정에 휩싸여 주체하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 비춰지는 것 이상으로 인물들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라는 점이 여러 장면에서 간접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주로 대화하는 장면 위주로 빠르게 진행되는 영화의 이면에는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수없이 할 말을 고르는 인물들의 시간이 존재한다. 농축된 시간과 망설임, 선택 등을 순간의 연기로 표현해내는 배우들의 내공이 빛을 발한다.
2006년 개봉한 덴마크 영화 ‘애프터 웨딩’(감독 수잔 비에르)의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에서 남성 두 명과 여성 한 명으로 구성된 인물의 성별을 뒤집고 배경을 뉴욕으로 바꿔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거대한 갈등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우아하고 평온하게 흐르는 이야기로 연출한 영화의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오는 23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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