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샤워에 관한 오해 하나. 항간에선 그를 ‘DJ 딥샤워’로 알고 있지만, 프로듀서로 먼저 데뷔했다. “프로듀서는 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잖아요. 그게 답답하더라고요. 하하.” 어려서부터 연예인을 꿈꿨을 만큼 주목받길 좋아하던 그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2016년 혼네의 내한 공연에서 데뷔 신고식을 치렀고, 이태원 소프와 홍대 헨즈 등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오가며 경력을 쌓고 있다.
딥샤워에 관한 두 번째 오해는 그가 ‘딥하우스에 특화된 프로듀서’라는 인식이다. “제가 만든 노래 가운데 제대로 된 딥하우스는 두어 곡뿐이에요. 제 뿌리는 전자음악에 있지만, 한 가지 장르로 규정되는 게 반갑지는 않아요. 틀에 갇히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는 신곡 ‘지구 한 바퀴’에서도 변화를 꾀했다. 전자 사운드 비중을 줄이고 밴드 악기 연주를 더해 ‘유기농 사운드’를 만들었다.
신곡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그리움’. 세계를 뒤흔든 감염병 때문일까. 딥샤워는 “사람들이 과거를 그리워한다”고 봤다. 그는 밴드 사운드로 듣는 이의 향수를 자극하고, 노랫말에도 “떠나간 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냈다. 10년 가까이 친분을 이어온 가수 키드와인이 노래를 불렀고, 랩은 “힙합·펑크 소화력이 뛰어난” 래퍼 스키니 브라운에게 맡겼다.
딥샤워는 본능에 따라 음악을 만든다. 경험, 음악, 미술, 영화 등 감정을 스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모으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해지면 곡을 짓는다. 노래 하나를 완성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반나절 남짓. 주변 뮤지션들 중에서 가장 빠른 편이란다.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결과다.
“음악은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내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음악을 만들 때도 영화감독의 입장이 돼 작업하려고 하죠. 그러려면 제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해요. 그 이야기에 거짓을 담아서도 안 되고요. 솔직한 이야기, 진짜 이야기를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믿어요.”
힙합에 빠져 비트메이커가 되려던 그는 입시를 준비하며 미디 작곡에 눈을 떴다. 그에게 전자음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행위”였다. “전자음악 프로듀서들은 드럼 킥에서부터 소리를 하나하나 만들어가거든요. 그게 무척 예술적인 행위로 느껴졌어요.” 딥샤워는 전자음악을 “덕질하기 좋은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전자음악에 사용된 여러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전자음악의 매력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는 의미다.
그런 그에게도 ‘전자음악 프로듀서’로 활동은 녹록치만은 않았다. 직접 전자음악 시장에 몸을 담아보니, 이곳이 너무 좁더란다. “힙합은 태평양이 됐잖아요. 그에 비하면 전자음악은 못이에요. 헤엄칠 공간이 부족해 이탈하는 뮤지션도 많고요. 안타까워요.” TV에선 BPM(분당 박자 수)을 높이고 ‘까까까까’를 붙이면 EDM이 완성된다는 식의 연출이 비일비재했다. 전자음악은 제대로 알려질 기회조차 없었던 셈이다.
딥샤워는 ‘이단아’다. “집에서 음악만 하는” 다른 프로듀서들과 달리 유명인사가 되고 싶어 해서다. 다만 관심 받는 게 마냥 좋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그에겐 새로운 이유가 생겼다. 딥샤워는 “아이콘이 탄생해서 시장이 커지면, 다양한 음악들이 조명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동료 음악인들이 이 ‘못’에서 나가지 않길 그는 바란다. 이제 갓 30대에 접어든 젊은 프로듀서는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짊어졌다.
“한국에서 음악은 BGM(배경음악) 성향이 강하잖아요. 그런데 전자음악은 한 번 몰입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장르예요. 서울커뮤니티라디오, 믹스믹스티비 등 전자음악 시장을 키우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많고요. 누가 뭐라고 말하든, 전자음악이 얼마나 멋진 장르인지 계속 보여주고 싶어요. 보통의 순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면서요.”
wild37@kukinews.com / 사진=딥샤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