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연은 최근 쿠키뉴스와 화상으로 만나 ‘원 더 우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진서연은 극 중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악행도 서슴지 않는 한주그룹 장녀 한성혜를 맡았다. ‘원 더 우먼’ 초반이 조연주와 강미나를 오가는 이하늬의 원맨쇼에 가까웠다면, 후반은 흑막으로 드러난 한성혜를 연기한 진서연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극 중 여자라는 이유로 경영권 승계에 차질이 생기자 한성혜는 본격적으로 야망을 드러낸다. 그가 타오를수록 진서연은 냉정해지려 했다. 과격함보다는 차갑고 우아한 모습으로 반전을 줬다.
“일반적으로 빌런은 화가 많고 악을 쓰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원 더 우먼’에서는 이하늬 씨의 캐릭터가 이미 강했어요. 1인 2역으로 다이내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반대로 저는 힘을 빼고 무미건조해야 재미가 살아나겠다 싶었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상류층을 생각하며 한성혜를 연기했어요. 의상도 화려함보다 우아함과 중성적인 느낌을 살리려 했고요. 흔하지 않은 빌런이라 더 좋았어요.”
진서연은 한성혜를 “진짜 나쁜 사람”이라 표현했다. 그에게 한성혜는 현실에 존재하는 소시오패스 같았다. 거듭된 센 캐릭터에 지쳤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악역이라 끌렸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던 그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찡해졌다. 극을 회상하며 먹먹한 표정을 짓던 진서연은 “(한성혜가) 나쁜 짓을 한 건 맞아도 무조건적인 빌런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하, 사실 제가 이 말을 하니 (이)상윤 오빠가 ‘진짜 빌런이 아니라 생각하냐’며 화를 냈어요. 하지만 저 나름대로는 감싸줄 부분이 있거든요. 한성혜는 아버지에게 인정받는 것, 그 하나만 바랐어요. 능력 있고 똑똑한데 장녀여서 두 남동생에게 치이고 뺏기기 일쑤죠. 속상함을 티 낼 수도 없고요. 그래서 결국 자신을 감추고 가진 걸 지키려고 하잖아요. 그런 점이 짠하고 불쌍했어요.”
‘원 더 우먼’은 한성혜의 악행이 드러나며 전환점을 맞았다. 13회에서 한성혜가 조연주(이하늬)에게 그의 할머니를 죽인 진범이 자신이라고 밝히는 부분은 진서연이 꼽은 명장면이다. 처음으로 악행을 고백한 순간이다. 이후 조연주는 각성해 한성혜를 검거한다. 파멸의 실마리가 된 신이다. 빌런임을 숨겼던 조용한 시누이. 복합적인 캐릭터인 만큼 진서연은 더 단순하게 접근하려 했다. 한주그룹을 갖는 것만이 한성혜의 목표라는 걸 재차 되새겼다.
“한성혜도 사람인데, 조연주와 대치하는 상황에 마냥 초연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감정을 최소화한 거죠. 그리고 죄의식을 못 느끼기도 했을 거예요. 한주그룹을 차지한다는 목표가 확실해서, 자기 앞길을 막는 것들을 치워버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까요. 원래 저는 레퍼런스를 보며 캐릭터를 준비하는 편인데, 한성혜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가 처한 환경과 마음의 무게만 표현해도 충분할 것 같았거든요. 조용히 묻혀 있던 사람이 야망을 드러내다 몰락하는 과정도 충분히 극적이잖아요.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대본 속 한성혜는 과격했다. 여기에 진서연의 아이디어가 더해지며 차분하고 날 선 지금의 한성혜가 됐다. 진서연의 섬세한 고민은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했고, 극의 갈등구조를 더 돋보이게 했다. 여성 캐릭터 범주를 확장했다는 점에서도 ‘원 더 우먼’은 그에게 큰 의미가 됐다. 영화 ‘독전’(감독 이해영)으로 연기자로서 부족했던 자신감을 채웠다면, ‘원 더 우먼’으로 스스로를 더 굳건히 믿게 됐다. 진서연에게 새로운 자극제가 된 셈이다.
“절제하는 연기의 맛을 알았어요. 이전까지는 ‘연기란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눈빛과 뉘앙스로만 감정을 드러내는 한성혜를 표현하며 세련된 맛을 느꼈어요. 앞으로도 ‘원 더 우먼’에서 했던 연기를 자주 떠올릴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처럼 야망을 갖고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여자들이 미디어에 더 많아지길 바라요. 연기적으로는,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강하게 전달하는 캐릭터를 또 한번 맡고 싶어요. ‘원 더 우먼’에선 제 기대치의 50%만 보여줬거든요. 앞으론 100%까지 해낼 거예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