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의 불륜을 마주한 리사’
3류 지라시 뉴스가 아닙니다. 실제 있었던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쿡기자의 눈을 의심하게 한 이 문장은 지난 10일 방송된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9회 중간 광고에 등장했습니다. 극 중 정희주(고현정)와 서우재(김재영)가 입맞춤하는 모습을 희주의 딸 안리사(김수안)가 목격하자, 방송사는 중간 광고 오른쪽 위에 이런 자막을 내걸었습니다. 배우 실명(고현정)과 배역 이름(리사)가 뒤섞인 탓에 드라마 속 내용을 설명하는 것인지, 배우 사생활을 전하는 것인지 애매모호합니다.
드라마 내용을 얘기하면서 배우 실명을 쓰는 ‘끔찍한 혼종’은 온라인 연예 뉴스에서 시작했습니다. 최근 며칠 간 보도된 드라마 예고·리뷰 기사 제목을 살펴보면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오나라, 이혼했지만 전 남편과 ‘쿨내 진동’…현 연인과 알콩달콩(장르만 로맨스)’(텐아시아), ‘박은빈, 로운 앞에서 옷고름 풀며 “이게 나의 비밀” 여인 고백(연모)’(MBC연예), ‘휠체어 탄 전지현, 건강한 두 다리 되찾을 수 있을까(지리산)’(뉴스엔)…. 이런 제목은 작품명을 뒤로 감췄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입니다. 한정된 지면에 긴 제목이 다 담길 수 없으니 작품명이 생략되곤 하는데, 이로 인해 기사 제목이 오독될 여지가 크기 때문입니다.
방송가 관계자는 말합니다. “기사를 읽는 사람이 드라마 속 배역 이름을 모를 수 있으니 보도자료 제목에 배우 이름을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야 인지도 측면에서 유리하니까요.” 클릭 수 경쟁으로 말미암은 이 같은 관행은 유명인사의 사생활을 둘러싼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나쁜 쪽으로 진화 중입니다. 위키트리는 지난 8월11일 ‘“재벌가 며느리…” 한동안 소식 뜸했던 이하늬, 반가운 근황 전했다’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SBS 드라마 ‘원 더 우먼’에 재벌가 한주그룹 며느리인 강미나 역으로 캐스팅된 이하늬가 SNS에 사진을 올려 근황을 전했다는 소식을 위와 같은 제목으로 보도한 겁니다.
쿡기자가 꼽은 최악의 제목은 이겁니다. ‘양정원, 성인사이트 몰카 사진 유출 피해자 됐다(연남동539)’(스포츠투데이), ‘‘연남동’ 양정원, 성인사이트에 몰카 사진 유출 ‘범인 색출’’(한국일보). 드라마 제목을 뒤쪽에 숨기거나 모호한 줄임 표현을 써서 실제 여성 연예인이 불법 촬영 피해를 겪은 것으로 오독하게 했습니다. 실재하는 불법 촬영 범죄와 그로 인해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보다 클릭 수를 앞세웠습니다.
17일은 ‘너를 닮은 사람’ 11회가 방송되는 날입니다. 이날 방송에선 아들 안호수(김동하)를 잃어버린 희주가 경찰서에서 구해원(신현빈)을 맞닥뜨린다더군요. 쿡기자는 드라마를 ‘본방 사수’할 계획입니다. 중간 광고 시간에도 TV 앞을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방송사가 자극적인 자막으로 시청자를 현혹하려 들지 않는지 지켜보기 위해섭니다. 혹여 첫줄만 읽고 스크롤을 내리신 독자가 있을까 우려돼 덧붙입니다. 불륜을 저지른 사람은 배우가 아니고 정희주입니다, 여러분!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