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과 연락하지 않는 이 씨(27)는 최근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고민이 많아졌다.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키우는 강아지를 돌볼 사람에게 사망보험금 등 재산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려견을 돌보는 조건으로 재산을 남기려고 했지만, 현 제도로는 방법이 없었다.
금융위원회가 사망보험금 청구권을 신탁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추진한다. 개정안이 국회를 넘으면 사망보험금을 회사에 맡겨 운용하고 처분할 수 있게된다. 보험업계는 신탁과 연계된 상품 개발을 고민 중이다.
10일 금융위에 따르면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규정 개정안’이 법제처 심사를 앞두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개정안은 현재 법제처 심사 신청 대기 상태”라며 “10월 말 시행 목표로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신탁은 재산을 신탁사에 맡기는 제도다. 신탁사는 계약에서 정한 방법에 따라 맡은 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한다. 특정 인물에게 특정 시기에 지급하는 등 다양한 조건을 달 수 있다. 개정안이 입법되면 일반사망 보험금도 조건을 붙여 신탁할 수 있다.
교보‧삼성‧한화‧흥국‧미래에셋 등 생명보험사들은 기존에도 종합신탁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한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고령화 시대에 맞춰 사망 이후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다양해지다 보니 신탁 시장은 계속 성장할 걸로 보인다”며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인가되면 보험상품을 연계하는 등 더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일반 신탁과 달리 사망보험금 신탁은 직계 존‧비속과 배우자만 수익자로 지정할 수 있다. 법률분쟁 최소화를 위해 법무부와 협의해 설정한 요건이다. 금융위는 입법예고 공지에서 “미성년자‧장애인 등 유족의 복지를 위한 개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이 입법되더라도 친구에게는 보험금을 남겨줄 수 없는 셈이다.
최근엔 사망보험보다 건강보험 성장세가 기대되지만, 건강보험은 신탁이 불가능하다. 다른 생명보험사 관계자는 “1인 가구는 건강보험에 관심이 많다”며 “요즘 고객들에게는 죽고 나서보다 살아있을 때 보험금을 어떻게 운용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건강보험에 관해 발생이 확실하지 않은 보험금까지 신탁에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입법예고안에는 “재해‧질병사망 등 발생 여부가 불확실한 특약사항에 관한 보험금청구권”이 제외되어 있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건강보험은 종신처럼 누군가에게 남길 목적의 보험금이 아니다”라며 “큰 금액도 아니다 보니 신탁으로 하기에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소비자가 보험금청구권 신탁을 활용하려면 연말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보사 관계자는 “10월 입법되더라도 회사별로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