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약이 있는데, 보험급여도 됐는데 사용은 못한다고

[기자수첩] 약이 있는데, 보험급여도 됐는데 사용은 못한다고

기사승인 2017-08-17 19:14:17
[쿠키뉴스= 조민규 기자] 최근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에 많은 환자들이 환영의 뜻을 표하고 있다. 특히 고가 약제를 사용하는 환자의 경우 의료비가 크게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약제가 고가이면서 경제성이 낮은 경우에는 급여가 어렵거나 건강보험 적용에 장기간의 시일이 소요되는 경우가 있다며, 치료효과가 어느 정도 기대되나 높은 비용에 비해 효과 정도가 분명하지 않아 비급여로 분류했던 약제는 환자의 본인 부담을 전액(100%)에서 탄력적(30%~90%)으로 적용해 환자 부담을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환자의 약제비 부담이 크게 낮아질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일부 환자의 경우는 오히려 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즉 오프라벨(약제의 허가사항 이외의 질환) 처방을 못한다는 것이다.

관계 법령상 보험에 등재된 약제는 식약처의 허가범위 내에서 사용해야 하며, 안전성·유효성이 충분히 확립되어 있지 않은 허가초과 항암요법은 다학제적위원회가 설치된 병원에 한해 심사평가원장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보험급여기준이 마련된 면역항암제(면역관문억제제) ‘키트루다’와 ‘옵디보’의 상황이 그렇다. 이들 면역항암제는 비소세포폐암과 흑색종에 대해서 허가를 받은 상태다. 하지만 면역항암제의 경우 수많은 암에 대해 임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우리나라 허가사항보다 더 많은 질환에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위암과 두경부암 등 일부 질환에 대해서는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보험급여가 적용되면 위암·두경부암 등 허가범위를 초과해 사용하는 환자들은 앞서 말한 기준에 따라 사용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환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한국신장암환우회 관계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 환자가 ‘우리 면역항암제도 곧 급여가 된다는 이야긴가요’라고 물어왔는데 ‘면역항암제가 신장암치료제로 허가도 받지못한 현실에서 식약처 허가도 받아야하고, 허가를 받고서는 다시 급여를 신청하면’이라고 설명을 하자 ‘제가 살아있는 동안 가능하겠습니까’라며 한숨을 쉬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오프라벨 처방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그나마 오프라벨 처방이 가능했던 몇몇 병원에서 요즘 정부 제재로 처방이 어려워졌다”며 “겉보기에 멀쩡한 말기 암환자에게 다른 치료대안이 없는 현재에 오프라벨 처방을 막으면 환자는 그냥 죽을 날을 기다리던가 여유있는 환자들은 일본으로 가서 처방을 받는다고 한다”고 밝혔다.

특히 “치료제가 있어도 쓸 수가 없는 현실, 이런 환자들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역시 허가초과 사용승인 절차를 거치는 동안 치료가 중단되는 상황 발생에 대해 환자들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급여기준을 발표할 때 ‘급여 등재 이전에 면역관문억제제를 투여 받고 있던 환자는 투여 주기 등을 고려해 최대한 안전하게 계속 투여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하지만 급여기준을 발표하기 전에 환자들의 입장을 고려했다면 ‘사후약처방’이 아닌 ‘사전약처방’이 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장 치료가 중단되는 환자들로서는 생명줄을 놓고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보장성강화 정책은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국민들이 없도록 하는 목적이 가장 크다. 그렇다고 유일한 생명연장의 희망인 치료제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반쪽짜리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환자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간다고 한다. 환자들의 고통이 담긴 호소가 나오기 전에 정책 구상 단계부터 환자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여줬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kioo@kukinews.com
조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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