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지행동치료 시행 권한, 책임까지 뒤따라야

[기자수첩] 인지행동치료 시행 권한, 책임까지 뒤따라야

기사승인 2018-04-03 00:10:00

지난 1월 말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일환으로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실시되는 정신치료에 대한 수가체계를 전면 개편함에 따라 인지·행동치료에 건강 보험이 적용됐다. 그러나 조건이 붙었다. 시행 주체를 ‘정신건강의학과 3년차 이상 전공의와 정신건강의학과·신경과 전문의’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즉 의료인이 시행했을 시에만 보험 청구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같은 소식이 들려오자 임상심리학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인지·행동치료는 임상심리학자가 주도해 왔으며, 의료인력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개편안으로 오히려 국민들이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상심리사는 시행기관, 수련과정에 따라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임상심리전문가 ▲임상심리사로 구분된다. 특히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는 전문 인력이다.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정신보건에 관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전문 인력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면서 정신질환의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의료, 사회복귀 등의 업무를 수행할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제정됐기 때문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학사학위 이상 소지하고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이 지정한 전문요원 수련기관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수련을 마쳐야 하는 등 자격 인증도 까다롭다. 실제로 한국임상심리학회와 한국상담심리학회의 자료에 의하면, 현재 등록된 보건복지부 공인 정신건강임상심리사는 2200여명이다. 이들은 병원에서 우울증, 공황장애, 사회불안장애, 공포증,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중독 장애, 수면장애 등에 필요한 심리치료를 수행하고 있으며, 민간에서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사설 사회복귀시설 또는 개인 상담센터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번 개편안에는 인지·행동치료 시행 주체에 임상심리사가 배제된 걸까. 근본적인 원인은 ‘의료법’에 있다. ‘미용 목적 외 모든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할 수 있다’는 테두리 내에서 ‘치료’ 행위의 주체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병원이 아닌 곳에서 무슨 치료, 무슨 치료, ‘치료’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사실 의료법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그동안 묵인하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관계자는 “서비스와 치료의 경계선이 모호하긴 하다. 임상심리학자들이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며 “그러나 건강보험은 치료행위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임상심리사의 서비스 지원 행위에까지 공식적으로 적용해주긴 어렵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현행 의료법 개정 등 더 큰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임상심리사를 의료인에 포함시키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온다. 의료행위에 대한 ‘책임’이다. 의료인에 포함되는 간호사의 모든 의료행위도 의사의 책임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행위의 성질과 위험성을 고려해 의사의 지시 하에 이뤄지는 것이다. 

이에 얼마 전 발표된 ‘상복부 초음파 검사 보험 적용’ 개정안 또한 “즉시 진단 및 판독이 병행되어야 하는 검사의 특성상 의사가 실시해야 하며, 다만 의사의 실시간(real time) 지도가 가능할 경우 방사선사의 촬영을 허용한다는 기존 유권해석에 따라 방사선사의 참여를 허용한다”고 명시했다. 당초에는 인지·행동치료 시행 주체와 같이 상복부 초음파 검사 보험 적용을 의사가 직접 실시한 경우만 인정하기로 했다.

정부도 임상심리사의 필요성을 인지했다. 인지·행동치료 시행에 있어 임상심리사의 자격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은 양쪽 모두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의료인의 책임감은 언제나 무겁다. 주사기 재사용, 신생아실 감염 등 의료사고가 잇따르자 의료인들은 어느 때보다 조심하고 있다. 칼을 들지 않고,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의 생명을 다룬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단 ‘책임’의 문제는 정부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국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2000여명의 임상심리사들과 소통하길 바란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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