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대하사극 ‘고려 거란 전쟁’을 연출하고 있는 전우성 감독이 최근 불거진 원작 배제 의혹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전 감독은 드라마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다.
23일 전 감독은 자신의 SNS에 “‘고려 거란 전쟁’은 리메이크나 일부분을 각색하는 형태의 계약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서사보다는 꼭 필요한 전투 장면을 생생히 재현하고자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집필한 길승수 작가와 원작 및 자문계약을 맺어 극 중 일부 전투 장면에 활용했다”고 밝혔다.
전 감독에 따르면 길 작가는 드라마의 극본을 맡은 이정우 작가가 대본 집필을 시작할 시점에 자신의 소설과 이야기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증과 관련한 자문을 거절했다. 이에 전 감독은 새 자문자와 고증을 거쳐 집필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전 감독은 “길 작가가 저와 제작진이 자신에게 자문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초 고증도 없이 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면서 “길 작가가 자신만이 이 분야 전문가처럼 말하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드라마 자문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역사를 연구하며 살아온 분”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고려 거란 전쟁’ 자문팀은 KBS1 ‘징비록’ 등에 참여한 조경란 박사를 주축으로 꾸려져 있다.
아울러 전 감독은 이 작가의 입장문도 함께 게재했다. 이 작가는 “‘고려 거란 전쟁’은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영상화할 목적으로 기획한 것이 아니”라면서 “KBS 자체 기획으로 탄생해 처음부터 제목도 ‘고려 거란 전쟁’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원작 소설은 지난해 여름 ‘고려 거란 전쟁’으로 바꿔 재출간됐다.
이 작가는 원작 소설이 자신과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고려사에 기반을 둬 새 이야기를 설계했다. 이 작가는 “원작 계약에 따라 원작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 소설은 ‘고려 거란 전쟁’을 태동시키지도, 근간을 이루지도 않는다”면서 “시작부터 다른 길을 갔고 어느 장면 하나 일치하는 것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원작 소설가가 16회까지는 원작 테두리에 있었으나 17회부터 그것을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표현하는 의도를 모르겠다”면서 “이 드라마는 분명 1회부터 원작에 기반하지 않은 별개 작품”라고 거듭 강조했다.
제작진 역시 같은 날 논란에 관한 해명에 나섰다. 제작진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 대하드라마를 준비하던 전 감독은 11세기 고려가 최대 패권국이던 거란을 꺾고 동아시아 전역에 200년간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열어낸 당시를 극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고려 황제 현종과 귀주대첩을 이끈 영웅 강감찬을 중심으로 거란과의 10년 전쟁사를 드라마로 만들고자 기획에 돌입했다는 주장이다.
제작진은 “전 감독이 길 작가 소설 ‘고려거란전기’를 검토하고 2022년 상반기 판권 획득 및 자문 계약을 맺었다”면서 “이후 전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쟁신 및 전투장면 디테일을 ‘고려거란전기’에서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고유 영역을 가진 또 다른 창작물인 만큼 제작진은 역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상황을 극대화하고 감동을 끌어낼 수 있는 ‘고려 거란 전쟁’만의 이야기를 구현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소설 원작을 쓴 길 작가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불만을 토로하며 ‘고려 거란 전쟁’이 원작자를 배제한 채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길 작가는 해당 글에서 ‘고려 거란 전쟁’ 전개를 향한 불만을 쏟아냈다. 이 게시글이 온라인상에 퍼지며 드라마를 향한 반감 역시 커졌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