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대파.
지난 2월부터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식품 두 개다. 언급된 이유는 다름 아닌 가격 때문이다. 사과는 너무 값이 뛴 것이, 대파는 할인가가 너무 낮았던 것이 논란이 됐다.
지난해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농산물 가격은 국민들이 모두 체감할 정도로 천정부지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월 우리나라의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6.95%로 집계됐다. OECD 평균인 5.32%를 훅 넘는다. 우리나라 먹거리 물가가 OECD 평균을 넘어선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직전 시기인 2021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물가 상승률이 크게 오른 가운데 사과가 돋보인다. 기상 악화로 전년 동기보다 19.5% 뛴 신선식품 물가지수 중에서도 사과는 88.2%나 올랐다. 먹거리 물가가 높다는 지적이 줄지어 나오며 정부는 1500억원 규모의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 투입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야당도 농산물 가격안정제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낸다며 떠들썩하다. 그러나 소매가만 막다 가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매가에는 변함이 없다. 또 온전히 세금을 사용하다 보니, 시장에서는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언제까지 세금으로 막는다는 말만 할 것이냐는 아우성이 들린다. 생산량 감소 방지를 위한 실질적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파는 왜 언급됐을까. 이번에는 가격이 875원이라 논란이었다. 2500원대이던 대파가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하자 875원이 됐다는 것이다. 모든 할인을 끌어모아 나올 수 있는 가격이, 평균물가인 것처럼 비친 것에 대해 ‘보여주기식 이벤트’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농산물 도매가가 결정되는 도매시장 중 한 곳인 가락시장 경매장에서 한 농민은 기자에게 “대통령이 875원이 합리적인 것 같다는 말을 해서 괜히 팔릴 것도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값 못 받고 파는 농민의 생업이 걸린 한숨이다.
심지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총선 전 대파를 ‘정치적 표현물’로 간주할 수 있다고도 했다. ‘사전선거 예상사례 안내사항’ 내부 지침을 통해 대파를 정치적 표현물로 간주할 수 있으니 투표소 내에 대파를 들고 들어가려고 한다면 외부에 보관할 수 있도록 안내하라고 배포한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입틀막에 비유해 ‘파틀막’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석열 정권이 “좌파도 우파도 아닌 대파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가격 등락이 심하던 농산물들은 여야 가리지 않고 ‘물가 안정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허울 좋은 먹이가 돼 정치권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이 같은 말들이 농민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됐는지 의문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말들은 총선 이후 줄어들었고, 중동 분쟁에 물가는 더 오를 것이라는 소식만 전해진다.
최근 오르는 생필품·가공식품 가격도 마찬가지다. 민심 유인책 아니면 상대 당을 비난하기 위한 ‘정치도구’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물가가 오를 때마다 모든 부분에 세금을 투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질적 대안을 내놓지 않는 정치인의 말은 표심을 얻겠다는 모습만 각인돼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가격으로 왈가왈부하기 전에, 말 한마디에 대파처럼 이리저리 쓸리는 농민 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