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센 사투리를 쓰는 남성이 “(물건을) 문 앞에 두고 가라”고 소리친다. 유튜브에서 ‘보이스 가드’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 목소리들은 여성 1인 가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성별을 드러내지 않고 상황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택배나 배달 음식을 받을 때, 층간 소음으로 갈등을 빚을 때 주로 쓰인다. 여성 1인 가구에게 보이스 가드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대전에 사는 이모(22·여)씨는 최근 보이스 가드 영상을 사용했다. 배달 받을 때 여자 혼자 사는 집임을 알리기 싫어 남자 목소리를 틀어놨다. 실질적인 도움을 바라서 이용했다기보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 외에도 주위에서 싸움소리가 크게 들렸을 때, 괜한 시비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보이스 가드 영상을 이용하기도 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황모(22·여)씨는 ‘최성훈’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어 배달을 받았다. 그는 “범죄 위험과 신상정보 노출을 꺼려 본인의 이름 대신 남성 이름을 선택했다”며 “여자 혼자 사는 걸 알려 좋을 것이 없다”고 밝혔다.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는 1인 가구 수 만큼, 여성 1인 가구가 느끼는 범죄 위험도 늘고 있다. 2016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 1인 가구의 46.2%가 사회 안전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중 37.2%가 ‘범죄 발생’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실례로 지난 4월 서울 광진구에서는 택배원으로 위장한 50대 남성이 여성 혼자 사는 집의 현관문을 두들겨 검거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7월 대전 유성구에서는 40대 남성이 창문 가림막까지 걷어가며 여성이 사는 집 내부를 훔쳐보는 사건이 있었다.
여성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증가하고 있다.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여성 대상 주거침입 범죄는 2016년 6043건에서 2020년 9751건으로 약 3000건 이상 증가했다.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보안 상품은 다양해지는 추세다. 지난 2019년 한 남성이 혼자 사는 여성의 집을 침입하려 했던 ‘신림동 사건’이 일어나면서 여성 1인 가구의 불안감은 극도로 커졌다. 한 보안 관련 스타트업은 이 사건을 보고 필름에 가짜 지문을 인쇄, 비밀번호를 유추할 수 없게 방지하는 특수 필름을 만들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도 안심 대비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여성 1인 가구를 위한 ‘안심 홈세트’를 지원하고 있다. 현관문 이중잠금장치, 휴대용 긴급 벨, 창문 잠금장치, 스마트 안전센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안심 마을 보안관’을 배치해 여성들의 귀갓길을 돕거나 CCTV를 저렴한 값에 설치해주는 지원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책도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기엔 역부족이다. 인천여성회 류부영 사무처장은 지자체의 대안이 여성 1인 가구 대상 범죄를 막는 데에 일부 효과가 있겠지만,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고 봤다. 류 처장은 “국민들의 젠더와 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단발적인 물품 제공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면서 “사회적으로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는 문화를 형성하고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 처장은 근본적인 대안에 관해서는 젠더폭력을 전담에서 수사하는 체계나 여성 대상 범죄 전담기구, 성 인식 개선 교육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방의진 객원기자 qkd041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