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지난 20일을 끝으로 17일간의 장정을 마무리했다. 중국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성공적인 올림픽”이라고 자찬했지만, 유독 잡음과 논란이 많았던 올림픽이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건 ‘공정성 결여’였다. 앞선 대회들과 달리 이번 대회에서는 계속된 편파 판정과 약물 스캔들 등 올림픽 정신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이 연출됐다.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21일 “베이징 올림픽은 올림픽의 본래 의미를 되묻게 하는 일이 많았다. 도핑 문제 등으로 경기의 공평성이 흔들리는 사태가 잇따랐다”라며 “정치색의 진함과 경기를 둘러싼 문제의 분출로 올림픽의 의의가 흔들리고, ‘평화의 제전’이라는 본연의 존재 방식이 재검토되는 대회였다”고 평가했다.
◆ 눈을 씻고 봐도 이해할 수 없는 판정 속출
시작은 쇼트트랙이었다. 중국은 신설된 2000m 혼성계주 준결승에서 선수 간 터치를 하지 못하고 최하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승 진출이 불가능 상황이었는데 경기 직후 10여 분간의 비디오 판독 결과를 거친 뒤 반전이 나왔다. 1위 헝가리에 이어 2위와 3위에 올랐던 미국과 러시아가 상대 방해로 페널티를 받고 실격 처리돼 중국만 결승전에 올랐다. 심판진은 중국의 노터치를 상대 러시아 선수의 방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해석했다. 결국 결승전에 무혈 입성한 중국은 금메달을 차지했다. ‘중국의 블루투스 신기술이 쇼트트랙에도 적용됐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쇼트트랙 판정 이슈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남자 개인전 1000m는 어처구니 없는 판정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이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종목이었다. 황대헌과 이준서가 준결승에서 1, 2위로 레이스를 마치고도 석연치 않은 실격을 당했다. 두 선수의 황당한 탈락으로 중국 선수들이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황대헌은 상대 선수와 충돌하지 않고 인코스를 파고들어 역전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실격 판정을 받았다.
한국 선수들이 빠진 결승전에서도 편파 판정이 이어졌다. 결승전에서 1위로 들어온 류 샤오린(헝가리)이 옐로카드를 받아 실격 판정을 받았다. 당시 2위로 들어온 런쯔웨이가 경기 막판 샤오린을 잡아당겼지만, 실격 판정을 받지 않았다. 런쯔웨이는 준준결승부터 결승전까지 2위만 하고도 금메달리스트가 된 선수가 됐다.
중국을 향한 편파판정에 박승희 SBS 해설위원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냐”라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냈다. 진선유 KBS 해설위원은 “나도 경기에 나가봤지만, 이번 경기는 편파판정 심했다고 생각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배성재 SBS 캐스터는 “(비디오 판독의) 혜택을 본 건 전부 중국 선수들”이라며 중국의 편파판정을 비판했다.
이밖에도 스키점프에서는 선수들의 유니폼이 헐렁하다는 이유만으로 우승후보로 꼽혔던 선수들이 연이어 실격됐고, 스노보드에서는 일관성 없는 채점과 명백한 오심이 불거지는 등 판정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편파판정으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린 나라는 개최국 중국이었다. 누리꾼들은 “올림픽이 아니라 중화인민체전”, ‘눈뜨고 코베이징 올림픽’이라며 중국의 행태를 비꼬았다.
◆ 경기 준비 엉망…최상의 상태로 경기 치르지 못한 선수들
경기 환경 조성도 최악에 가까웠다.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은 상태가 나쁜 빙질이 대회 기간 내내 문제가 됐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힘겹게 레이스를 펼쳤다.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인 황대헌과 최민정은 500m에서 레이스를 펼치다 넘어지며 메달 획득 기회를 놓쳤다. 혼성 계주 2000m 준결승에서도 박장혁이 막판 스퍼트를 펼치다 아쉽게 넘어졌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일본 여자 팀추월 선수 다카기 나나가 결승전 때 마지막 코너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다 잡았던 금메달을 놓쳤다. 이외에도 수많은 선수들이 아무런 충돌 없이 미끄러지며 베이징 빙판의 희생양이 됐다.
스키, 스노보드 등 다른 종목도 사정은 비슷했다. 자연 눈이 아닌 100% 인공눈으로 이뤄진 환경에서 정상적인 경기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스키 여제’로 불리는 미카엘라 시프린(미국)은 알파인 스키 5개 종목에 모두 출전하며 역대 최초 5관왕까지 노렸지만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한 채 올림픽을 마쳤다. 자신의 주종목이었던 대회전과 회전에서는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미끄러지며 실격당했다. 이어진 슈퍼 대회전과 활강에서는 각각 9위와 18위를 기록하며 완주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마지막으로 출전한 복합에서도 자신의 주력 종목 부분인 회전 경기 도중에 미끄러지면서 끝까지 체면을 세우지 못했다. 이에 외신들은 ‘100% 인공눈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경기장 밖의 상황도 그리 좋지 못했다. 부실한 식사는 대회 내내 논란이었다. 선수들은 뷔페식 선수촌 식당을 이용하는데, 음식의 질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중국 입국 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중이던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바이애슬론 대표팀 발레리아 바스네초바는 SNS에 "닷새 동안의 식사"라는 글과 함께 격리 호텔의 음식 사진을 게재했다. 바스네초바가 올린 사진에는 까맣게 탄 고기 몇 조각, 파스타 한 주먹, 감자 등 음식이 제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정재원은 “선수촌 식당 음식은 그리 맛있지 않다. 베이징에 도착한 날 저녁에 선수촌 식당을 방문한 뒤 한 번도 안 갔다”고 말했다. 한국 선수단은 대한체육회가 지원하는 급식 지원센터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숙소의 상태도 온전치 않았다. 핀란드의 크로스컨트리 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한 카트리 릴린페라는 지난 10일 자신의 SNS에 선수촌 숙소가 물바다가 된 영상을 공유했다. 천장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장면이 담겼고 바닥 역시 물이 차오른 상태였다. 한쪽에서는 누군가 빗자루 같은 도구로 물을 퍼내는 모습도 포착됐다.
◆ 약물로 얼룩진 올림픽
대회 후반부는 도핑 논란으로 얼룩졌다.
‘피겨 천재’로 불리던 카밀라 발리예바(ROC)는 피겨 단체전이 끝난 뒤 도핑에 적발됐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때 실시한 도핑 검사에서 트리메타지딘 양성 반응이 나왔다. 트리메타지딘은 협심증 치료제 또는 흥분제로 사용되는 약물로 2014년부터 금지약물로 지정됐다.
이로 인해 발리예바의 개인전 출전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반도핑기구(WADA),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제기한 이의 신청을 기각하고 그의 출전을 허락했다. 발리예바가 미성년자이고 도핑검사 결과를 늦게 받았다는 이유였다.
간신히 개인전에 출전한 발리예바였지만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을 이기지 못했다.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연달아 실수를 하면서 엉덩방아를 3차례나 찍었고, 그는 최종 4위를 기록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발리예바 이외에도 3명의 선수가 대회 도중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이란의 남자 알파인 스키에 출전한 이란 국가대표 호세인 사베흐 셈샤키가 금지약물인 단백동화남성화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이 나타났다.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스키 선수 발렌티나 카민스카와 봅슬레이 선수 리디야 훈코가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 카민스카의 의 샘플에선 단백동화남성화스테로이드와 두 가지 흥분제 성분이 발견됐으며, 훈코의 샘플에서 금지 약물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 성분이 검출됐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각종 논란으로 얼룩진 베이징 올림픽을 ‘스캔들 올림픽’이라고 혹평했다. WP는 “이번 올림픽의 최종 이미지는 처참한 프리스케이팅 후 눈물을 흘리는 발리예바가 될 것”이라며 “올림픽은 오랜 기간 논쟁으로 가득 차왔지만, 이번은 또 다른 최악을 기록했다. (최악의 논란들은) 베이징 올림픽을 스캔들 올림픽으로 굳혔다”고 했다.
김찬홍 기자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