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어진 권력자, 권력의 취기에서 깨어나야

삐뚤어진 권력자, 권력의 취기에서 깨어나야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추천하며
글‧정태연 중앙대 교수(심리학과)

기사승인 2024-12-09 09:18:50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말은 국가의 여러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은 본디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대신 행사하는 제한된 권한을 가진 것이지, 그들 자체가 권력의 원천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가 지켜야 할 규범의 본질은 위임받은 권력을 선용해서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국민이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판이하다. 권력자들은 자신이 곧 권력의 원천인 것처럼 행동한다. 위임받은 권력을 사적인 이득과 편애하는 집단의 특혜를 위해 번번이 남용하고 악용한다. 국민을 권력의 근원으로 섬기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위에서 군림하면서 지시하고 지배하고 억압하는 데 능숙하다. 이처럼 권력을 사유화하는 위정자가 많을수록 국민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 권력자가 위임받은 권력으로 주인을 지배하는 형국, 즉 주객이 뒤바뀐 상황에서 국민이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 국민이다. 국민의 뜻이라거나 국민만 보고 가겠다거나 국민은 무조건 옳다거나…. 안타깝게도 문제는 이런 말의 대부분은 실상 빈말에 가깝다는 점이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막론하고 사적인 이득을 위해 암암리에 패거리를 만들지 않은 곳이 없고, 공적인 조직을 전횡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여론을 무시하면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아랑곳하는 곳이 없다.

그 최악의 사례가 12월 3일 심야에 대한민국을 느닷없이 강타한 비상계엄령이다. 명분은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대부분 국민의 눈에는 최상위 권력자들이 자기의 불리한 처지를 타계하고자 자행한 불법적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이런 무도한 발상과 야만적 행위가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참담하다.

우리 사회 권력자들이 2024년도에 보인 이런 모습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많은 교수가 도량발호(跳梁跋扈)를 간택했다. 이 말은 권력을 가진 자가 높은 곳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함부로 짓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날뛰는 모습을 뜻하는 고어이다. 이 사자성어는 권력과 세력을 전횡하며 제멋대로 군림하는 우리 권력자의 모습, 그래서 정의와 공정이 위태로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유감스럽게도 너무 잘 보여준다.

권력이 부당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정의와 공정이 자리할 공간은 없다. 정의는 옳고 바른 것에 관한 판단 체계이고 공정은 그러한 체계를 실현한 정도인데, 성숙하고 바람직한 사회는 이 둘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이것이 무너지면 어떤 사회도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가치를 기준으로 자기가 속한 사회를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 자기가 정의롭고 공정하게 행동할지 결정한다. 그래서 권력자가 바르게 행동하지 않을 때, 나머지 구성원에게도 그런 행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어진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회 문제나 갈등은 크게 보면 정의와 공정이라는 화두로 귀결한다. 또한 어떤 사회에서든 무엇이 정의이고 공정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대립의 긴장감이 없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긴장 속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의 틀을 짜고 기강을 세우고 공동체를 가꾸는 일은 다수의 시행착오와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장기간의 험난한 과정이다.

이처럼 나라다운 나라, 상식이 통하는 반듯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세운 나라가 늘 공고한 것은 아니어서, 그 사회를 망가뜨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여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이 공적인 권력을 사적으로 악용하는 사람들이다. 변질된 권력은 정의와 공정의 어린싹부터 제거함으로써 순식간에 파벌과 계략, 강압과 맹종이 횡행하는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다. 

권력을 오남용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특성이 이중성이다. 그들은 어두운 장막 뒤편에서는 끝없이 사적인 욕망을 탐하면서도 대중 앞에서는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거짓과 속임을 일삼는다. 그러면서 자기의 이런 모습에 부끄러움을 모른다. 무치지치(無恥之恥) 즉,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맹자의 말씀처럼, 비뚤어진 권력자들의 후안무치한 태도가 국민을 좌절시킨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숨기거나 속일 수는 없다. 진실을 보여주는 단서와 증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고 하지 않던가. 권력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잘못 쓴 칼은 그 끝이 권력자 자신을 향하는 비수가 될 수도 있다. 권력을 위임한 국민이 그 권력을 다시 회수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많은 권력자는 권력의 취기에서 깨어나야 한다. 많은 국민이 작금의 시국에 대한 우려와 함께 위임받은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그들에게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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