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정의 1도 올린 세상] 시로 말하는 시 권하는 시인

[이연정의 1도 올린 세상] 시로 말하는 시 권하는 시인

기사승인 2025-03-11 09:37:10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

화장실에 자꾸 가는 아들에게 물었다 / 왜 자꾸 가? / 쉬러 가 /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똥꼬가 헐 텐데? / 의자 위에 오래 앉아 있는 건? / 변기가 의자보다 편한 쉼인 건 / 방금 나도 알던 일 / 똥 참으면 병나듯 / 자주 쉬러 가 / 말할 수밖에 //(참으면 안 돼, 이연정) 

일상에서 말 없는 아들과 대화하려면, 아들의 말과 행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인 관찰과 ‘왜?’라는 질문을 수없이 해야지.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리는 아들의 뒷모습, 오래도록 물 내리는 소리가 없고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만 화장실 문밖으로 새어 나온다. 화장실에 왜 자꾸 가냐고 물으니 저런 대답이 나왔다. 나도 같은 이유로 화장실을 들락이면서 아들의 행동에 이유를 알고자 한 어리석음을 탓했다. “자주 쉬러 가”라고 말할 수밖에.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를 살펴보자. 최근 성인 대상 10년간 매년 한 권 이상 책을 읽은 종합 독서율은 2013년 72.2%를 시작으로 매년 감소하여 2023년 43%로 대폭 감소하였다. 성인 절반 이상인 57%가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결과이다. 독서율이 이렇게 저조한데, 시는 얼마나 읽고 있을까? 주변에 어떤 시인은 ‘시를 창작하면 무엇하냐며, 읽어 줄 사람이 없다’고 토로한다. 어려운 시일수록 가치가 높고 대중과 가까운 시는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읽기 어려운 시일수록 서점 가판대에서 더 빨리 사라진다는 사실은 외면하는 것일까? 수없이 많은 시집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가판대에서 사라지고 있다. 다소 희망적인 건 노벨문학상 보유국이 되면서 서점 매출액이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시를 읽지 않을까? 

시는 어렵고 까다로워서? 단어나 어절에 숨겨진 의미나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숨바꼭질 같은 의도치 않은 에너지 소모 때문에? 시가 어려워 읽기가 부담된다면 그것은 독자의 탓이 아니고 작가가 해결할 문제이다. 우리는 시가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시 교육은 감상과 읽기 중심 교육이 아니라 분석에 치우친 교육이었다. 분석된 시를 암기해야 시험 성적으로 반영되는 모순된 교육 방법 때문이지 않을까?  

시는 간결하고 읽기 쉽고 일상과 밀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상의 경험과 인식이 공감의 영역을 넓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유와 상징은 독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야 한다. 우리의 경험과 삶의 가치가 다르기에 시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시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오해를 바꿔야 작가는 시를 읽기 쉽게 창작할 것이고, 독자는 시를 쉽게 가슴에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현대인들이 시를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직 단 한 권의 시집을 출간하지 못한 필자지만 시를 읽으면 좋은 것들이 많음을 알기 때문이다. 삶은 막연하고 복잡하며 알 수 없는 관계들로 가득하다. 사람은 매일 어느 순간에 고독과 마주하고 침잠하며 번민으로 헤매기도 한다. 혼자여서 쓸쓸한 날이 있고, 둘이어서 고통스럽기도 하다. 사소한 순간들이 커다란 사건으로 변하거나 뜨거웠던 사랑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삶 속의 시는 우리에게 잔잔하고 깊은 울림으로 성찰과 희망, 따뜻한 사랑과 공감의 힘으로 다가온다. 결코 수렁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시의 힘이다.  

마음이 쓸쓸한 날 / 너를 만났어 // 뜨거운 위로보다 / 담백한 아메리카노 같은 / 네가 필요해 // “생초콜릿 라떼 아이스 샷 추가요” 주문하는 소리 // 너는 더 쓸쓸한가 봐 / 슬픈 사연 많았나 봐 // “같은 걸로 두 개요” / 쓸쓸한 마음 두 개가 만난 날이었어 // (커피 주문, 이연정) 

시의 화자는 마음이 쓸쓸하고 괴로운 날 사랑하는 이에게 따뜻한 아메리카노 같은 위로를 받고자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는 무척 단 생초콜릿 라떼에 샷까지 추가하는 주문을 한다. 분명히 무언가 아픈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내 아픔보다 너의 아픔이 전해져 왔기에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 않고 같은 메뉴를 택한다. 서로가 통한 지점이다. 사소한 커피 주문에서 쓸쓸한 마음 두 개가 만나 위로가 된다.  

많은 시인이 시를 읽으라 권한다. 시의 힘을 말한다. 그러나 시가 불편하면 읽기가 어렵다. 나는 시가 편해지길 바란다. 시가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어를 비틀고 꼬집어 이해하기 어려운 시, 의미를 숨기거나 없애는 밀당의 고수다운 시가 아닌 의자보다 편한 변기 같은 시, 취향이 아니더라도 상대를 위해 생초콜릿 라떼를 주문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왜 안 읽느냐 탓하기보다 왜 읽지 않을까를 우선에 두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 나에게 말했다 / “당신이 필요해요” // 그래서 / 나는 정신을 차리고 / 길을 걷는다 /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는 걸음이 느리다. 시는 보폭이 크다. 빽빽한 문장에서 글자를 하나씩 뽑아 폭을 넓힌다. 그래서 시는 숨을 편하게 한다. 독자에게 시가 필요하면 시는 살아있는 삶을 선물할 것이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조심스럽지만, 자칫 발을 잘못 디뎌 떨어진다 해도 시의 품 은 안전할 것이기에. 시를 권하는 이유다.


이연정 충무교육원 교육연구사는 공주사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2년 교직에 입문했다. 이후 아산교육청, 충남교육청 장학사를 거쳤다. 충남교사문학회 활동을 시작으로 현재 (사)한국작가회의충남지회 사무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회 온도를 1% 올리기 위해 교육 현장에서 치열하게 공감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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