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밀정’ 송강호, 가장 평범해서 더욱 적확한 회색분자의 얼굴

[쿠키인터뷰] ‘밀정’ 송강호, 가장 평범해서 더욱 적확한 회색분자의 얼굴

기사승인 2016-08-31 10:50:09 업데이트 2016-08-31 10:50:51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의 주인공 이정출(송강호)은 일제 강점기, 민족을 배반하고 일본 순사가 돼 경무국까지 진출한 이다. 한때는 의열단의 간부 김장옥과 동고동락하던 사이였지만, 밥술을 뜨고 가정을 유지하고 목숨을 부지하려다 보니 친우가 죽는 것도 막지 못하고 일본의 히가시 부장 아래서 의열단을 쫓게 되는 입장이 됐다.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매국노가 되지도 못한 회색분자 이정출은 의열단의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하려다 김우진의 정공법에 어영부영 다시 애국과 매국 사이에서 방황한다.

배우 송강호를 대한민국 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로 꼽는데 주저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1000만 배우, 연기력의 진수 같은 수식어가 그를 따르겠지만 그 외에도 송강호가 대표하는 것은 하나 더 있다. 평범한 사람이다. ‘밀정’속의 이정출은 삶에 개연성이 없는 이다. 회색분자이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의 일을 쫓다 보니 맥락 같은 것은 그의 인생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자신이 배반한 나라에 마음의 빚이 있지만 그렇다고 다시 애국자로 돌아가기는 어렵고, 중간 지점에서 부유하는 평범한 이정출을 송강호는 가장 적확하게 연기했다.

“크나큰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생겨서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오히려 재미가 없지 않나요. 오늘은 이 쪽 갔다가, 내일은 저 쪽 갔다가 하는 게 그 시대의 사람들을 비롯한 우리 모습이기도 하죠.” 최근 팔판동에서 만난 송강호는 “관객들이 좋게 봐주셔야 할 텐데”라며 이정출에 대해 설명했다. 송강호의 말을 빌리자면 이정출의 삶은 ‘밀정’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정출의 미세한 마음의 변화나 삶의 태도가 바뀌는 과정은 ‘밀정’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사실 영화는 암울한 일제 강점기의 회색 분자들이 살아온 방식과 당한 고통들,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스럽게 죽어간 애국 열사들의 이야기와 그에 관한 연민은 대한민국 대중문화에서 끊임없이 다뤄져 왔다. 그러나 ‘밀정’은 의열단의 이야기와 더불어 애국자보다 몇 십 배는 많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서사를 다룬다. 나라의 아픔을 외면했던 이들에 대한 합리화는 아니다. “저는 역사물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근대사든 사극이든 우리가 거쳐 온 삶을 통해서 현실의 지혜를 얻는 느낌의 영화들이 제 취향이죠. 이정출은 ‘황옥경부사건’에 얽힌 황옥이라는 실제 인물이 모델이에요. 역사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불분명한 인물이기도 하죠. 그래서 오히려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었어요. 확실하게 독립운동가다, 혹은 매국노다라는 역사적 판결이 난 이가 아니기 때문에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었죠.”

‘변호인’ ‘사도’에 이어 ‘밀정’까지. 본의 아니게 실존 인물을 계속해 연기하게 됐지만 의도한 바는 아니다. “이야기 자체의 매력이나 새로움을 보고 시나리오를 선택하는데, 어쩌다 보니 자꾸 실존인물을 연기하게 되네요. 사실 부담스럽기는 해요.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배우로서는 덜 부담스럽죠. 그렇지만 이야기가 워낙 매력적이어서 선택하게 됐어요.”

“개인적으로도 역사물을 좋아해요. 근대사든 오래된 이야기든, 조상들이 거쳐 온 삶을 통해 현실의 지혜를 얻는 영화들이 제 취향이거든요. 최근에 근대사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단순히 시대의 아픔을 다뤘다기보다는 다양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모여서 시대극까지 번지고, 그런 것들이 한국 영화의 풍성함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좋은 일이죠.” 영화 ‘밀정’은 다음달 7일 개봉한다. 15세가.

onbge@kukinews.com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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