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운 감독이 ‘밀정’을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2월이다. 당시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위한 범죄물을 구상 중이었지만 그 사이 작은 소품 영화를 하고 싶었다. 러닝타임 140분의 ‘밀정’의 시작은 저예산 소품 영화였다는 것이 김지운 감독의 설명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 묵직하고 장중한 느낌이더라고요. 이 시대 인물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 고민이 많이 됐어요. 극중 의열단 단장을 맡은 정채산도 실제로는 당시 25세였거든요. 젊고 묵직한 배우가 없는 거예요. 그 와중에 송강호 씨가 이걸 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 이걸 한다고?’ 하며 놀라서 진행시켰는데, 하하. 알고 보니 송강호 씨한테는 ‘김지운이 이걸 한다더라’라며 제작사 대표가 말해서 캐스팅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박차가 가해지고 투자도 되면서 점점 규모가 커졌어요. 물론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묵직함과 스파이 장르가 가진 오락적 재미가 공존할 수 있겠다 싶은 것도 있었죠.”

김지운 감독은 ‘밀정’에 관해 “‘콜드 느와르’라 불러달라”고 말했다. “사실 ‘콜드 느와르’라는 건 내가 만든 말이에요. 차가운 스파이 영화를 만들어야 되겠다, 하고 시작했거든요.” 그 시대를 다룬 영화들의 식상한 느낌을 지워버리기 위해 김지운 감독이 선택한 것은 차가운 컬러였다. 블루와 블랙 위주로 톤을 돌리고, 냉랭한 느낌을 유지했다.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에서 주로 나오는 감정적 신파를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는 것이 김지운 감독의 말. “뜨거움은 있지만 흘러넘치거나 과잉되는 것은 싫었어요. 넘치지 않는 감정선을 유지하려고 했죠.”
더불어 라벨의 볼레로나 'When you'er smiling', 슬라브 무곡 등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1920년대에 나온 음악들을 동시대에 일어난 사건에 배치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일제 강점기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그런 음악들이 나오고 있었어요.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서도 반어적인 화법을 구사할 수 있는 배경음악이었죠. 컬러와 감정선, 음악. 세 가지를 가지고 차별하된 시대극을 식상하지 않게 만들어야 되겠다는 것이 제 계획이었죠. 계획은 성공한 것 같아요.”
그 외에도 ‘밀정’은 스스로에게도 많이 다른 영화였다고 김지운 감독은 밝혔다. 창작자로서의 김지운 감독은 여태까지 자신이 생각한 멋진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김지운 감독의 자의식이 담긴 한 장면을 구상하고, 앞뒤 장면을 메워 넣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놈놈놈’의 경우 끝없는 황야의 질주 장면과 더불어 끊임없이 쫓고 쫓기는 인간 군상을 담고 싶었기 때문에 그 장면부터 구상하고 앞뒤를 메웠죠. 그런데 ‘밀정’은 달랐어요. 스펙터클함과 나의 자의식을 넣어야지, 이런 생각은 없었어요. 대신 이 영화에서 필요한 것이 뭘까? 어떻게 비춰줘야 할까? 같은 것들을 내내 고민했죠.” 김지운 감독의 새로운 미장센이 담긴 ‘밀정’은 다음달 7일 개봉한다.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