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정우 기자]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삼성그룹의 경영 계획을 비롯해 재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 특검 “경제 고려했지만 정의 위한 구속영장”
16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12일 이 부회장을 소환, 22시간에 걸친 밤샘 조사를 마친 후 4일여 만에 내린 결정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 여부는 오는 18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특검은 총 430억여 원을 뇌물공여액으로 규정했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재단 204억원 출연 외에 최씨 일가의 독일 현지법인 코레스포츠와도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35억원 가량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씨 측이 개입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도 16억2800만원을 후원했다. 일련의 대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한 정부의 지원 등이 이뤄졌다고 본 것이다.
이날 오후 이규철 특검보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청구를 결정함에 있어 국가경제 등에 미치는 사안도 중요하지만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횡령 혐의도 적용됐다. “일반적으로 회사 자금을 이용해 뇌물공여 등을 할 경우 원칙적으로 금액 자체를 횡령으로 본다”는 설명이다. 이에 더해 지난해 12월 6일 이 부회장이 국조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지원의 대가성 일체를 부인한 점도 위증으로 보고 포함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 재계 첫 구속기소 결정 파장 ‘일파만파’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삼성과 재계는 즉각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삼성그룹은 성명을 통해 “특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법원에서 잘 판단해 주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삼성은 일련의 지원이 박 대통령 정부의 압력과 강요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으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결정으로 이와 무관한 사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날 입장 자료를 내고 “이 부회장의 범죄혐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속수사는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주 또는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면 불구속 수사가 합당하다는 논리다. “의혹의 배경에 정치적 강요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이뤄진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고도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이경상 경제조사본부장 명의로 “삼성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는 점에서 CEO를 구속 수사할 경우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이 매우 걱정스럽다"며 불구속 수사에 힘을 실었다.
이 같은 주장은 ‘국정농단’이라는 복잡다단한 사안을 파헤치는 특검이 최씨 일가 관계자 등 직접적인 당사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재계에 우선 ‘철퇴’를 가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지적과 맞닿아 있다.
실제 삼성 측에서 이 부회장 외에도 미래전략실 최지성 부회장, 장충기 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 특검의 잇따른 소환에 불응한 사례는 없어 구속수사 필요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특검은 최씨 일가 지원 업무에 관련된 이들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 방침을 내렸다.
특히 재계 첫 대상으로 삼성에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총수 구속기소라는 실질적 타격이 가해지는 것은 향후 다른 기업에까지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경총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 가뜩이나 얼어붙은 우리 기업인들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더욱 꺾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사법당국의 신중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서는 삼성 다음 특검 대상으로 SK, 롯데 등이 거론되고 있어 관계자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상태다. 이들을 포함한 기업들은 삼성에 대한 특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사안의 민감성에 따라 말을 아끼고 있는 상태다.
다만 재계 한 관계자는 “국정농단이 이뤄진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뒤따르지 않은 상태에서 재계 일부에 대한 ‘징벌적’ 구속기소는 또 다시 정부가 기업을 상대로 압력을 가할 가능성을 막지 못한다”며 “사법당국의 판단 이후 이에 따른 조치가 이뤄지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반면, 일부 야당 의원들과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은 재계도 국정농단의 ‘주범’이라며 구속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삼성, ‘경영 마비’ 장기화 국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수사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삼성은 당분간 산적한 경영 현안에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이미 삼성은 매년 연말 단행하는 임원 인사 등을 무기한 미뤄두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등은 올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에 대한 대처부터 장기적인 성장동력 확보까지 마비된 상태다.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 사업인 자동차 전장 부문 ‘빅딜’로 꼽히는 미국 하만 인수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하만 대주주인 미국계 헤지펀드가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일부 주주들이 이번 인수가 합리적이지 않다며 이사진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 금액은 80억달러(약 9조6000억원)로 반대 주주들을 상대로 설득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 부회장의 구속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조차 어렵게 됐다.
이에 더해 인사 단행이 미뤄지면서 올해 채용도 불투명해졌다. 일반적으로 채용 규모 등에 대한 결정은 인사에 연계되는 데 당장 사장단 인사 등에 대한 최종 결제가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성 외에도 특검 대상으로 거론되는 다른 기업들의 계획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삼성은 올해 지주사 전환 등의 굵직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통해 지주회사 전환 등을 포함한 기업구조 개선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오는 6월까지 대략적인 방향이 결정될 예정이었으나 이에 관한 절차도 모두 마비된 상황이다. 장기적인 조직 혁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문제시 되는 부분에 대해 잘못이 있다면 (삼성에) 적법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실적인 기업 구조에서는 경영 차질이 빚어지고 장기적인 경쟁력 저해로 이어질까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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