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김정우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피고인 신문이 마무리됐다. 재판부가 뚜렷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혐의 일체를 부인한 이 부회장 측에 어떤 판결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3일 오전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전날에 이어 계속 진행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신문은 전날 끝났으며 이날은 변호인 신문이 이뤄졌다. 오전 재판에서 변호인 신문에 이어 재판부 신문까지 마무리 됐다.
재계 등은 지난 2월 17일 이 부회장이 구속되고 4월 7일 정식 재판 시작 이래 4개월여 동안 진행된 이번 법정공방에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에서 특검과 삼성 양측 진술의 정황과 관련된 신빙성 등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미전실과 선 그은 이재용…청탁 가능성 일축
이 부회장은 피고인 신문에서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 관련 사실관계 대부분을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경영권 승계 지원 등에 대한 대화가 오간 적 없으며 경영권 승계를 대통령에게 부탁할 입장도, 상황도 아니었다는 논리다.
특검이 주장하는 뇌물죄의 대가성과 부정 청탁 부분을 모두 일축한 것이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박 전 대통령이 지원해주는 대가로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딸 정유라씨를 지원했다며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보고 있다.
전날 오후 약 5시간여 동안 진행된 특검팀 신문에서 이 부회장은 미래전략실(미전실)이 아닌 삼성전자 소속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전실은 삼성의 그룹 차원 의사결정을 주도해온 조직으로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자 올해 전격 해체됐다.
이 부회장은 “처음부터 삼성전자 소속이었고 95% 이상 삼성전자와 이 회사 계열사 관련 업무를 했다”며 “미전실에 한 번도 소속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미전실 의사결정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이 주도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미전실에서 전담하는 그룹 차원 의사결정에 이 부회장 자신은 개입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특검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의 일환으로 보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추진과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 스포츠재단 출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서는 “함부로 개입할 것이 아니다”며 관련 보고도 받지 않았고 양사 사장들과 최 전 실장이 알아서 처리했다고 답했다. 양사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 없는 사업상의 결정’이라고 주장해온 기존 입장대로 사업 구조 개편을 통한 승계를 생각한 적 없다는 입장도 고수했다.
최 전 실장도 “이 부회장은 이미 안팎에서 후계자로 인정받고 있다”며 경영권 승계는 대통령에게 청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진행될 부분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청문회 당시와 밝힌 대로 정유라가 정윤회·최순실의 딸인지도 몰랐다는 주장도 되풀이 했다. 승마 지원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에 자신이 일일이 개입하지 않았으며 실무진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승마 지원을 제대로 하라’는 질책을 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정유라에 대한 지원으로 연결해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부정한 청탁 대가로 정씨를 지원했다는 특검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반박이다.
이튿날 진행된 변호인 신문에서도 이 같은 내용을 재확인 하는 과정이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일련의 경영권 승계 언급, 합병 성사 대가로 정씨 지원 요구, 지원에 대한 감사 인사 등 청탁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느냐는 물음 대부분에 “없었다”고 답했다.
◇ 정황 증거 둘러싼 공방…진술 신빙성 판단에 주목
특검은 삼성그룹이 미전실을 중심으로 부친인 이건희 회장 와병 이후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사 합병, 지주사 전환 등 각종 시나리오를 실행했고 이 부회장은 이를 알고 있었으며 박 전 대통령에게 최순실·정유라 지원을 대가로 청탁했다는 취지의 공소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특검이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운 정황 증거로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할 말을 독대 전에 정리한 ‘대통령 말씀자료’, 독대 후 박 전 대통령 발언을 적은 ‘안종범 수첩’ 등이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이런 정황 증거들의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독대 당시 청와대가 삼성의 현황을 파악하려 작성된 것일 뿐 실제로 그런 말들이 오갔다고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신문에서 이들 문건에 적혀있던 ‘면세점 취득’, ‘승계 문제’,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된 ‘엘리엇’ 문제 등의 언급 여부를 모두 부인했다. 다만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병원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만 밝혔다.
일련의 과정을 종합할 때 재판부는 사건 정황, 진술 신빙성 등에 따라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이 검찰 조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승마협회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가 정유라 지원에 대한 부분만 없었다고 번복한 부분 등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다만 50회차 동안 진행된 공판에서 삼성이 대가를 바라고 지원을 했다는 직접적인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소사실이 그대로 인정될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특히 피고인 신문에서 전 삼성 임원들이 ‘승마 지원 등이 대통령과 친분 있는 최순실 영향력 때문’이라는 점과 이에 대한 결정을 이 부회장이 내리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강조해 재판부가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한편 이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형이 내려질 결심공판은 오는 7일 열릴 예정이며 선고 공판은 이로부터 2-3주 후에 열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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