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할례를 피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여성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이로써 ‘젠더 박해’ 피해자 난민 수용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대법관 박보영)는 라이베리아 국적인 A양(15)이 낸 난민 불인정결정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대법원은 이날 “할례는 여성 신체에 극심한 고통을 주는 직접적인 위해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박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국내에서 할례를 난민 인정 요건으로 본 첫 사례다. 앞서 A양의 어머니는 할례를 강요하는 라이베리아 전통단체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국에서 살해 위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A양과 함께 지난 2012년 3월 한국에 입국했다. 할례는 의료 목적이 아닌 전통·문화·종교적 이유에서 여성 생식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거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다.
이번 판결로 재판부는 기판력에 의거, 이후 발생하는 다른 할례 여성에 대해서도 같은 판결을 내려야 한다. 기판력은 확정된 법원의 판단 내용에 대해 다른 법원이 재판내용과 모순되는 판단을 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효력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할례 등 젠더 박해를 이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사례가 없었다. 현행법상 젠더 박해가 난민 인정 사유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젠더 박해란 난민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출될 수 있는 할례·성폭력·성매매·조혼·아내상속제도·반군에 의한 강간 등을 말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난 1991년부터 난민 인정 사유에 성차별적 관습과 성폭력 등 젠더 박해를 포함하라고 공식 권고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이를 난민법에 반영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난민 인정률이 낮은 국가 중 하나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총 7542명이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외국인은 단 98명에 불과했다. 전 세계 난민 인정률이 올해 기준 38%인 반면, 우리나라는 1.9%에 그쳤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는 난민 수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난민법이 가진 문제점을 수정하고, 난민 심사인력을 확충해 더욱 신속·충실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유철 기자 tladbcjf@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