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에서 검사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덕분일까. 배우 곽도원은 고위직 전문 배우처럼 보인다. 최근작인 ‘특별시민’(감독 박인제) ‘아수라’(감독 김성수) 에서도 정당 관계자 검사 등 소위 ‘엘리트’ 직군의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런 그가 이번엔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역할을 맡았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강철비’(감독 양우석)에서 곽도원은 청와대에서 일하는 곽철우 역을 맡아 북측 최정예요원 엄철우를 연기하는 정우성과 함께 극을 이끌었다.
역할의 직군은 비슷할지언정 그의 연기는 매번 다르다. 곽도원은 영화마다 다른 결을 내보이며 언제나 있을 법한 인물을 우리에게 선보였다. ‘강철비’의 곽철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도원은 연기 찬사에 관해 “시나리오가 좋은 덕분”이라고 웃음을 보였다. 양우석 감독이 10년 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만든 섬세한 시나리오와 방대하고 철저한 사전자료 덕을 봤다는 겸손함이다.
“양우석 감독이 워낙 많은 자료를 가져왔어요. 촬영 전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죠. 진보·보수의 역사부터 격동의 세월을 지나 현시점에 닿은 우리나라 이야기…. 1980년대 핵보유국에 관한 이야기와 핵 관련 전문가의 의견 등등 아주 많은 자료를 받고 대화했어요. 그 기간에 곽철우가 가져야 할 안보 사상을 정립했죠. 시나리오가 10년 전부터 준비했던 거라 무척 재미있었어요. 시나리오에 표현해야할 감정이나 흐름이 모두 계산돼 있기도 했고요.”
훌륭한 시나리오와 탄탄 준비는 좋은 연기의 밑바탕이지만, 결국 인물을 분석하고 준비한 것을 풀어나가는 것은 배우의 역량이다. 곽도원은 이에 관해 “고위 공직자라도 일상에서 보면 결국 옆집 아저씨일 뿐”이라며 자신이 곽철우라는 인물을 만들었던 과정을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공적인 업무 중인 정치인만 봐요. 그러니까 경직된 모습으로만 기억하죠. 하지만 그분들도 사적으로 볼 땐 그냥 동네 아저씨들이잖아요. 이재명 성남 시장이 TV 예능프로그램 나올 때와 연설할 때 전혀 달라요. 그런 것처럼 일상에서의 곽철우와 공적인 곽철우의 색은 분리돼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곽철우는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숨 쉴 틈을 주는 캐릭터에요. 그런 부분에 유의하면서 인물의 형태와 모양을 만들어 나갔죠. 그런 색은 배우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야 하니까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고생한 부분도 있다. 영어, 중국어를 현란하게 구사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엘리트 연기가 쉽지는 않았다는 것. 곽도원은 “영화 중 옥스퍼드를 나왔다는 대사가 있어서 ‘실제 옥스퍼드 출신이 보면 어떻게 하나’라는 고민을 했다”라며 “영어는 마음속에 문법으로나 있는 건데 그걸 겉으로 끄집어내려니 무척 힘들었다”라고 털어놔 웃음을 자아냈다.
곽도원의 노력으로 탄생한 곽철우가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한다면 곽철우와 엄철우, 두 철우의 호흡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곽도원은 극 중 두 철우가 친해지는 과정이 편집돼 아쉽다고 했지만 둘의 감정에 큰 어색함은 없다. 두 배우의 연기 덕분이다. 곽도원은 ‘아수라’에 이어 두 번째로 합을 맞춘 정우성에 대해 “놀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영화를 보고 놀랐어요. 현장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죠. 사람이 거짓말하면 안 돼요. 현장 분위기가 고스란히 스크린에 전달되니까요. 현장에서 서로 믿고 기대며 하루하루 촬영한 순간들이 카메라에 다 묻어나는 느낌이었어요. ‘아수라’ 때 일단 서로의 맛을 다 봤어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있었는데, ‘강철비’를 찍는 과정에서 더 커졌어요. 연기하면서 아주 행복했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