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와 이마트가 온라인 사업부문을 분할해 합병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별도 법인으로 두어 온라인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이다. 여기에 분할과 동시에 1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를 받아 실탄까지 확보했다.
쿠팡과 티몬, 위메프 등 국내 온라인 이커머스 기업들이 규모를 크게 키웠지만 뚜렷한 수익성을 내지 못하는 가운데 신세계라는 유통공룡의 참여가 이커머스의 판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적인 오프라인 강자가 이커머스 시장에 대규모 투자금을 실탄 삼아 뛰어든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신세계와 이마트는 온라인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합병, 온라인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설립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어피너티 에퀴티 파트너스와 비알브이 캐피탈 매니지먼트로부터 1조원 이상의 투자를 받게 됐다. 신주 인수 또는 기타 방식을 통해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신세계 측은 아직 물적분할 방법과 신설법인 설립 및 일정 등과 관련해 현재까지 확정된 사항은 없으며, 이사회를 통한 내용 확정시 재공시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해 공언했던 '깜짝 소식'이 이 온라인몰 확대였다"며 "2300억원을 들여 만들어 놓은 물류 인프라와 상품 카테고리를 더 강화하고, SSG닷컴의 프리미엄화 등에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8월 스타필드 고양 오픈 간담회에서 기자들에게 "온라인 사업과 관련해 연내 깜짝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 바 있다. 신세계의 온라인 사업은 신세계몰, 신세계백화점, 이마트몰, 트레이더스, 부츠, 신세계TV쇼핑, SI빌리지, 하우디 등을 포함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가 야심차게 준비한 '깜짝 소식'은 11번가 인수와 불발 등으로 지난해에서 올해로 미뤄졌다. 신세계는 11번가 인수를 타진했으나 11번가 소속원들의 반발로 무위에 그친 바 있다. 이에 자체 역량을 키우고 투자를 받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온라인 사업에 대한 1조원의 투자금은 이커머스 업계에서도 큰 편에 속한다. 신세계 외에는 쿠팡이 올해 기준 1조4000억원(14억달러)의 투자로 가장 큰 금액을 투자받은 기업으로 손꼽힌다.
쿠팡의 경우 투자금의 상당액을 물류센터 설립 등에 투자한 반면 신세계의 경우에는 물류센터 기반을 두고 있는 관계로 사업부문 투자에 대부분을 쓸 수 있어 금액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세계는 현재 김포와 용인에 물류센터 2개를 두고 있다. 합병법인은 이 물류센터를 이용하고 더 늘리며 오프라인 매장에서 다뤘던 물품 카테고리를 확장할 것으로 짐작된다. 온라인 사업이 커지면 오프라인 사업을 조금 축소하더라도 온라인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는 신세계의 진출이 이커머스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특히 가격에 대한 경쟁력에 주목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합병법인은 기존 이마트 신세계의 바잉파워를 갖고 가격 핸들링까지 가능해진다"며 "별도 법인이 되면 이마트에서 1만원인 제품을 이마트몰에서 1만원에 팔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9500원에 팔 수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장력이 높은 이커머스 분야에 네이버, 카카오에 이어 리테일러인 신세계까지 대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가격 경쟁에서 스케일(규모) 경쟁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이면서 기존 사업자들이 자체적인 경쟁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도 "신선식품이나 생필품 중심의 상품들에 강점을 갖고 있는 신세계 이마트의 기존 체인을 가진데다 카테고리도 장악하고 있어 이를 가격에 풀어나가기 시작하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신세계 이마트는 쿠팡과의 가격전쟁 등을 통해 가격에 대한 위협을 받아 왔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특성상 가격을 완전히 다운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별도법인이라는 장치를 통해 가격 규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신세계의 이 같은 결정은 글로벌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온라인 공룡으로 떠오른 아마존에 기존 오프라인 강자인 월마트, 코스트코 등이 몇 년 내에 역전당할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아마존을 유통의 미래로 보고 오프라인 사업과 온라인 사업을 함께 가져가는 '한국의 아마존'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세계그룹은 5년 후인 2023년 온라인 사업만 연간 매출로 현재의 5배 규모인 10조원을 달성하며 온라인을 그룹의 핵심 유통채널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신세계를 제외한 유통 빅3인 현대와 롯데 등은 신세계의 선례로 온라인 시장에서의 성장세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신세계의 온라인 진출은 11번가 인수설 때부터 알려져 있던 수순"이라며 "현재 국내에 성공적인 온라인 모델이 없는데 좋은 시너지를 내 좋은 모델을 마련하면 뛰어들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구현화 기자 ku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