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국내 주요 부실기업들의 인수, 매각이 화두였다. 산업은행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시기에 산업은행이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우건설을 비롯해 한국지엠(GM), 금호타이어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산업은행은 매각 타이밍을 매번 놓쳤다. 이로 인해 관련 기업들은 매각이 연기되거나 법정관리 위기에 내몰리고 관리 부실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천문학적인 비용까지 쏟아야할 판이다.
산업은행 매각에 관해 사례를 보면 국내 건설, 자동차 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기보다는 ‘잿밥’에만 마음이 가 있는 모습이다.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한국지엠(GM)의 경영난 악화를 이유로 군산공장 폐쇄 절차에 들어갔다. 한국지엠의 최대 주주는 지엠 본사이고 2대 주주(지분 17%)는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사외이사 3명을 추천해 두고도 공장 폐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지난달 한국지엠 이사회에 올라온 구조조정 안건에서도 산업은행 이사 3명은 모두 기권 했다.
금호타이어도 해외매각 덫에 빠진 모습이다. 금호타이어의 주채권은행도 산업은행이다. 지난해 이미 금호타이어 매각을 놓고 더블스타와 거래 성사까지 갔다가 상표권 분쟁과 노조가 주장한 2년 고용보장, 최대주주 5년 유지 등에 발목이 잡혀 좌초된 바 있다.
이후 금호타이어 경영정상화 방안을 놓고 노사 자구안 마련을 주문하면서 뒤로는 더블스타와 재매각을 추진하다 노조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노조의 동의 없이 해외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산은은 법정관리 카드로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반복되는 실수의 이면에는 '낙하산 인사' 라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한국지엠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지엠의 사외이사, 감사로 활동한 사람 중에 절반 가까이가 산업은행 출신이었다. 이번 군산공장 폐쇄 결정과 관련해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산업은행에서 퇴직한 임원 3명이 파견돼 또 도마위에 올랐다.
산업은행 회장 역시 대주주가 정부인만큼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인물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왔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선출돼 떠난 홍기택 전 회장은 제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인수위원 출신이었다. 전형적인 친박(친박근혜) 인사였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산업은행에는 ‘친박인사’로 분류되어 온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자리를 떠나고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친문인사’인 동명이인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자리를 이어 받았다. 이 회장은 동국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할 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캠프 비상경제대책단에 참여해 대선 공약을 기획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회사를 매각하면서 실패했던 사례들을 거론하면서 산업은행 한계론을 거론하고 있다. 정치권은 산업은행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20년 넘게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해온 산업은행, 이제 그 내부 구조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혈세 투입으로 한계에 직면하면서 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제는 산업은행 감사에 독립적인 회계법인 임원을 임명하는 등 산업은행에 대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종혜 기자 hey33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