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확률형 아이템 판매 등과 관련해 3개 게임사에 10억원에 달하는 과징금·과태료 처분을 내리면서 업계가 추진 중인 ‘자율규제’ 노력마저 무색해지는 모양새가 됐다.
▶ 공정위 ‘철퇴’에 굳은 업계 표정
지난 1일 공정위는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획득 확률·기간 관련 정보를 허위로 표시하는 등 거짓·과장 및 기만적 방법으로 소비자를 유인한 행위 등’을 이유로 넥슨코리아, 넷마블, 넥스트플로어 등 3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총 2550만원, 과징금 총 9억84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넥슨은 온라인 게임 ‘서든어택’의 확률형 아이템 ‘연예인 카운트’를 판매하면서 함께 제공되는 ‘퍼즐조각’별 상이한 획득 확률을 명시하지 않고 ‘퍼즐조각 1~16번 중 랜덤으로 지급 됩니다’고 표시한 점, ‘카운터스트라이크온라인2’의 청약철회 관련 사항을 계약 전 적절하게 표시하기 않은 점 등으로 과태료 550만원과 과징금 9억3900만원을 부과 받았다.
넷마블은 ‘마구마구’ 확률형 아이템 확률 상승 이벤트에서 게임 내 장비 아이템이나 선수 등장 확률을 실제 상승보다 높게 표시, ‘모두의마블’에서 이벤트로 제공되는 특정 캐릭터 등에 ‘한정’이라는 표현, 사용, ‘몬스터길들이기’ 이벤트에서 실제 미미한 획득 확률을 ‘대폭 상승’과 같이 표현 등 행위로 과태료 총 1500만원, 과징금 4500만원의 조치가 내려졌다.
넥스트플로어는 확률형 아이템의 획득 확률을 다르게 표기, 한시적으로 진행한다던 게임 재화 가격 인하 이벤트를 상시로 전환한 행위 등으로 5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이번 과태료·과징금 결정은 대부분 2016~2017년 게임 내 추가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이벤트 진행과 관련된 표기 등 적발 사항에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소비자에 대한 ‘기만’ 또는 ‘거짓’ 행위라고 규정하고 전상법 위반행위에 대한 역대 최고 수준 과징금을 부과했다.
3사는 기본적으로 공정위 결정을 존중, 수용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표현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 이미 관련된 수정·개선 조치가 이뤄진 점 등에 아쉬움을 표했다.
넥슨은 “기본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사안의 해석에 있어 입장의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추가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넥슨의 입장은 ‘랜덤’이라는 표현을 ‘상이한 확률의 무작위’라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공정위가 ‘등가의 확률값’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무작위’라는 의미에 ‘같은 확률로 발생한다’는 개념이 내포될 수 있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이처럼 정교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관련 문구는 지난해 수정됐다.
또한 넥슨은 전체 과징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과 액수가 부가적으로 제공된 이벤트에 대한 문제임에도 관련 상품 전체 매출액을 기반으로 산정된 점 등도 다시 판단을 받고자 하는 입장이다.
넷마블은 “3개 게임에 대해 착오가 있어 이미 이용자들에게 사과공지를 통해 설명했고 개선조치도 완료했다”며 공정위 의결서 확인 후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문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처분에 대한 직접적인 말은 아꼈다.
관련 문제로 이미 지난해 홍역을 앓은 넥스트플로어는 ‘공정위 결정을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문제가 불거진 당시 대표 사과문과 함께 환불 등 가능한 대부분의 조치를 취한 만큼 다시 거론되는 상황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 ‘자율규제’ 노력 와중에…“과도기 과정”
공정위의 이번 조치는 공교롭게도 게임 업계가 선제적 조치로 추진 중인 자율규제 확대 움직임과 시기가 맞물렸다. 발표 나흘 전인 지난달 28일 한국게임산업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과 게임생태계 발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것이다.
이번 협약에 따라 협회는 다음달부터 임원사를 중심으로 자율규제 적용 대상을 플랫폼·등급 구분 없는 모든 게임으로 확대하며 유료 아이템 각각의 개별 확률을 공개하도록 하고 7월 ‘자율규제 강령’ 개정을 통해 이를 업계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독립 자율기구 발족과 청소년 보호 체계 정비 등도 추진한다.
자율규제 도입은 2010년 이후 게임 산업의 성장과 함께 확률형 아이템을 포함한 게임 수익모델(BM) 관련 입법이 논의되면서 본격 추진됐다. 자발적인 노력으로 기업의 수익모델을 법으로 규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제도의 경직성과 업계 위축 등 부작용 등 우려를 최소화 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2016년 11월 학계 전문가, 소비자단체, 정부기관, 이용자, 게임업계 등으로 구성된 정책협의체가 발족, 자율규제 강령이 마련됐고 지난해 시행세칙 마련 등 부분적 도입이 이뤄지기 시작해 이번 문체부 협약까지 이어졌다.
이처럼 업계 전반에서 자율규제라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공정위 조사에서 소비자 편익을 저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적발되고 이번 과징금·과태료 부과까지 이뤄졌다. 공정위로서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지만 업계는 그 판단 기준이나 부정적 인식 확대가 부담되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사항 중 다수가 확률형 아이템 상품 자체 외에 부가적으로 제공되는 이벤트 혜택에 관련되며 해석이 다를 수 있는 표현 때문이라는 점도 게임사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넥스트플로어의 경우도 문제가 된 확률형 아이템은 일정 횟수 이상 구매할 경우 제공되는 부가 아이템을 포함한 계산 결과를 안내해 실제 상품 확률과 차이를 보였다는 해명을 내놓은 바 있다. 게다가 역설적으로 넥스트플로어는 2015년 업계 최초로 ‘드래곤플라이트’ 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자발적으로 공개한 첫 ‘자율규제’ 주자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업계 한 관계자는 “(적발된 사항은) 대부분 게임사들의 판단 미스인 부분이 크다”며 “서비스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도 “지금의 시장에서 (게임사들이) 일부러 소비자를 기만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세부적인 부분에서 조율하는 과도기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조치가 업계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중소 게임사 관계자는 “이번 일을 보면서 향후 판단에 참고하게 됐지만 (공정위가) 너무 획일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도 보인다”며 “확률형 아이템 등은 아직 풀지 못한 실타래 같은 것들이 많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그래도 최근 국제사회에서의 게임 중독 질병코드 등록 시도나 중국 진출의 어려움 등 좋지 않은 소식만 이어지는 와중이라 더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정우 기자 taj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