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2016년 7월 11일은 지옥과 천당을 오간 하루였다.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진행된 유로 2016 결승전에서 호날두는 전반 16분 프랑스 미드필더 파예와 볼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무릎을 다쳐 고통을 호소했다. 페르난두 산토스 감독은 교체를 권했지만 호날두는 완강했다. 기어코 붕대를 감고 다시 잔디에 섰지만 5분이 채 지나기 전에 다시 쓰러졌다. 결국 호날두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다가 콰레스마에게 바톤을 넘겼다.
교체 아웃됐지만 호날두의 열정은 계속됐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호날두의 ‘호통’을 들어가며 프랑스의 강력한 파상공세를 막아냈다. 때론 루이스 나니를 앞세운 날카로운 역습이 있었지만 유효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가 공격 과정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여럿 만들며 포르투갈 골문을 위협했다. 포르투갈은 그야말로 몸을 던지는 사투로 실점을 막았다. 결국 연장까지 가는 접전이 이어졌고, 교체 투입된 포르투갈 공격수 에데르가 환상적인 중거리포로 골문을 열었다. 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의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경기 후 매체들은 일제히 호날두의 필드 밖 활약을 조명했다. 한 현지 매체는 “포르투갈의 열세가 계속됐지만 호날두가 투지를 불살라 선수들을 일으켜 세웠다”고 승리 요인을 꼽았다. 또 다른 매체는 “호날두가 감독 옆에서 선수들을 강하게 질책했다. 힘겹게 버티던 포르투갈이 결국 감독의 용병술과 에데르의 결정력으로 승리를 쟁취했다”고 평가했다.
소위 ‘잘 나가는’ 축구팀이라도 상대팀에 분위기를 내주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투철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팀은 전력에서 다소 뒤지더라도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다.
정신력 강화는 한국이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경쟁력을 높일 가장 합리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같은 조에 편성된 스웨덴, 멕시코, 독일은 모두 한국보다 한 수 위 전력으로 평가된다. 대등한 경기를 하려면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한 발 더 뛰는 수밖에 없다.
신태용 감독은 지난해 8월 A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할 당시부터 ‘정신적 지주’에 큰 관심을 보였다. 첫 발탁은 ‘40대 공격수’ 이동국이다. 이동국은 코치로 합류한 차두리보다 나이가 많을 정도로 현역선수로는 황혼기에 가까웠다. 당시 신 감독은 “이동국은 정신적인 측면뿐 아니라 당장 필드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동국은 솔선수범으로 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희생이 필요하다. 나부터 동료를 돋보이게 하는 마음으로 뛰겠다”면서 ‘팀 게임’을 강조했다. 짧은 준비 기간이었지만 신 감독은 최종예선 2경기를 2무로 마무리하며 본선행을 확정한 데 이어 11월 평가전에서 콜롬비아, 세르비아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다.
신태용호의 ‘정신적 지주’가 근래 새 국면을 맞았다. 신 감독은 지난 14일 러시아월드컵 예비명단 28인 발표에서 이동국을 제했다. 같은날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출한 예비 엔트리 35명에도 이동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직전까지 최고참 역할을 한 염기훈이 갈비뼈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이동국은 분명 구미가 당기는 자원이었다. 그러나 김민재 등 주축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신 감독은 빡빡한 선수 구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신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서 선수를 많이 데리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있는 선수를 가지고 전술 활용을 극대화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대표팀 최고참은 33세 이근호가 됐다. 신 감독은 이청용, 기성용 등 이제는 대표팀에서 ‘고참급’이 된 주전 선수들의 역할 또한 기대하고 있다. 해설위원으로 SBS에 합류한 박지성은 16일 미디어 인터뷰에서 “기성용은 대표팀에서 주장으로 보낸 시간이 꽤 된다. 대표팀이 좋았을 때, 안 좋았을 때를 모두 경험했다. 이번 월드컵을 치르는 데 있어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박지성은 이청용에 대해 “그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풍부한 경험이 있다.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신 감독 역시 “이청용은 상당히 메리트가 있는 선수다. 두 번의 월드컵 경험이 있고 개인 스킬도 탁월하다”고 했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