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카드] 없어져야 할 그라운드 인종 차별

[옐로카드] 없어져야 할 그라운드 인종 차별

없어져야 할 그라운드 인종 차별

기사승인 2018-05-31 14:05:12

평화와 화합의 장이 되어야 할 월드컵이 개막도 전에 그라운드 인종차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9일 스위스 장크트갈렌에서 열린 이탈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A매치 친선전에서 한 관중이 ‘이탈리아 주장은 순혈만 해야 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어 논란이 됐다. 타깃은 이날 이탈리아 부주장으로 출전한 마리오 발로텔리다. 발로텔리는 이탈리아 출생이지만 가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주장 보누치가 교체 아웃될 경우 완장을 넘겨받을 예정이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진 않았다.

발로텔리는 최근 소속팀 OGC 니스에서 재기에 성공하며 폼이 올라왔다. 이날도 선제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견인했지만 그는 일부 관중에게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발로텔리는 경기 외적인 것으로 크게 실망했다. 경기 후 자신의 SNS에 현수막 사진을 올리며 “지금은 2018년이다! 제발 정신 차려!”라고 일갈했다.

이 같이 그라운드 내 인종 차별은 오늘 내일 문제가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정치, 종교, 인종에 의한 차별을 엄중하게 대처하고 있지만 여전히 각종 차별이 경기장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월 2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에서 열린 러시아와 프랑스의 평가전에서 관중들은 프랑스 선수들을 향해 인종 차별 발언을 쏟아내며 경기 질을 떨어뜨렸다. 잉글랜드 대표팀 소속 애슐리 영은 30일(한국시간) 영국 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월드컵에서 인종 차별이 발생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모르겠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종차별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인종차별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승우(헬라스 베로나)는 지난 6일 열린 2017-2018 이탈리아 세리에A 36라운드 AC밀란과의 경기에서 득점포를 가동했지만 현지 해설자의 비하 발언으로 마냥 웃지 못했다. 당시 한 지역 방송사 해설자는 중계방송 중 “저 선수는 밀란을 상대로 득점한 것보다 개고기로 만든 음식을 먹는 선수로 더 유명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우는 해설자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열린 콜롬비아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콜롬비아 미드필더 카르도나가 경기 중 한국 선수를 향해 양손을 눈 아래에 갖다 대는 비하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이다. 경기 후 그는 “후회한다”는 짤막한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고, 콜롬비아축구협회도 사과문을 발표했다. FIFA는 징계규정 58조 1항에 따라 카르도나에게 5경기 출장 금지와 2만 스위스 프랑(약 210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출전 금지 경기에 평가전이 포함되며 카르도나는 이번 월드컵에서 뛸 수 있게 됐다. 현재 카르도나는 콜롬비아 예비명단 35인에 포함돼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도 인종차별적 행동이 나왔다. 우루과이 미드필더 페데리코 발베르데는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한 뒤 두 손을 양쪽 눈 끝에 갖다 대는 세레머니를 했다. 국내 팬뿐 아니라 해외 언론들도 해당 세레머니에 대해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를 조롱했다”며 날을 세웠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발베르데는 “친구에게 한 개인적인 세레머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장 터진 제2의 비하행동으로 발베르데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우루과이축구협회는 공식 SNS를 통해 우루과이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눈을 찢는 포즈로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이후 매스컴에서 문제가 제기되자 이들은 “관자놀이에 양 손 검지를 대는 건 ‘미치도록 열심히 잘 했다’는 뜻”이라고 무마했다.

손흥민도 차별에서 빗겨가지 못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은 지난해 한 남성으로부터 “새로 발매된 DVD 복사본을 가져다 줄 수 있나? 혹성탈출 복사본을 가져와. 나는 웨스트햄이다. 너는 재수 없어”라는 말을 들었다. ‘DVD를 팔아라’는 말은 흔히 아시아인이 유럽에서 불법 DVD를 판매하고 다닌다는 근거 없는 소문에서 유래된 인종차별적 표현이다.

경기장 내 인종차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지만 열광적인 팬들의 행동은 더욱 과감해지고 있다. 박지성은 현역시절 상대팀 팬들로부터 “칭크(chink)에게 질 수 없다” “칭크를 쓰러뜨려라” 등의 말을 수없이 들었다. 김보경(가시와 레이솔)은 EPL 카디프시티에 입단한 2012년 말키 맥케이 당시 감독으로부터 “빌어먹을 동양인(chinkys)”이란 말을 들었다.

월드컵은 스포츠 단일 종목으로 열리는 가장 성대한 축제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만큼 스포츠 기본 정신이 투철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념이나 정치색, 인종에 상관없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기 위해 세계 축구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이다니엘 기자 dn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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