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홈플러스 목동점 지하 2층 매장에 들어서니 예전보다 확 넓어진 매장 안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매장 규모는 그대로일 뿐 실제로 넓어진 것은 아닌데도 그러했다. 통로가 배로 넓어지고 앞으로 시야도 뻥 뚫려 매대 끝까지 볼 수 있어 훨씬 넓어진 것처럼 느낀 것이었다. 노출 콘크리트로 된 시원한 벽면과 넓은 통로에 박스째로 쌓인 팔레트까지 마치 코스트코, 트레이더스나 빅마켓 등 창고형 할인점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슈퍼나 대형마트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소포장 신선식품과 함께 소포장 가공식품들이 팔레트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기존 대형마트의 장점에 창고형 할인점을 입힌 것이다. 즉 매대 맨 위에는 대형마트나 슈퍼처럼 소포장, 중간 이하는 창고형 할인점을 표방한 신개념 매장인 셈이다.
임일순 사장의 부임 후 첫 실험인 '홈플러스 스페셜 목동점'은 이처럼 하이브리드 디스카운트 스토어(Hybrid Discount store)로 꾸며졌다. 임 사장은 "취임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말한 것처럼 홈플러스의 비전을 담아 '홈플러스 스페셜'을 만들었다"며 "앞서 홈플러스 스페셜을 도입해 성과를 거둔 대구점과 서부산점에 이어 서울에서도 성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 홈플러스가 할 수 있는 가장 똑똑한 선택, 하이브리드
홈플러스의 현재 대주주는 MBK사모펀드다. 현 자산의 가치와 수익을 높이고 다시 팔아야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큰 규모의 투자를 당장 실행하기에는 녹록치 않다. 따라서 기존의 모델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홈플러스가 목동점에서 실험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매장은 바로 이런 최적의 선택지로 보인다.
하이브리드 매장이란 대형마트가 갖고 있는 소용량 상품, 신선식품의 장점과 대형 할인점의 장점을 합친 것이다. 홈플러스는 표적 집단 인터뷰(FGI)를 통해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주부들과 창고형 할인점을 주로 이용하는 주부들에게서 장단점을 들었다.
그 결과 대형마트 이용객은 수입상품이 없고 대용량 제품이 없는 점을 불편한 점으로 여겼고, 할인점을 이용하는 고객은 찬거리나 채소 등 소용량 제품을 사러 다시 마트나 슈퍼에 들러야 하는 점을 아쉽게 여겼다. 이에 따라 두 업태의 장점만을 결합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실제로 홈플러스 스페셜을 도입한 결과는 놀라웠다. 김웅 홈플러스 상품부문장 전무는 "대구점과 서부산점의 경우 오픈 후 지난 8일까지의 매출이 113.2% 상승했다"며 "홈플러스 목동점은 인근에 이마트·롯데마트와 코스트코, 빅마켓까지 몰려 있어 '유통의 격전지'지만, 매출 상승을 자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가려운 곳까지 긁어 주는 방식으로 '겉은 창고형 할인점처럼, 그럼에도 속을 들여다보면 슈퍼·마트에서처럼 있을 건 다 있는' 매장이 탄생한 것이다.
특히 목동점은 홈플러스에게는 각별한 곳이다. 목동점은 1996년 한국에 진출한 까르푸가 2001년 처음 문을 연 곳으로, 2006년 이랜드에 인수됐다가 2008년 당시 홈플러스의 주인이었던 테스코가 인수하면서 홈플러스로 이름을 바꿨다. 홈플러스는 서울 핵심상권이자 유통격전지에서 고객의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 고객 선택권을 넓히다…슈퍼이면서도 창고같은 '투트랙'
우선 통로가 넓어지면서 매장 자체가 넓어진 효과가 눈에 띈다. 김웅 전무는 "스페셜 매장의 매대 간 간격을 기존 홈플러스 매장보다 22% 늘려 대형 카트가 부딪치지 않고 일방통행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통로가 넓어진 만큼 MD는 '선택과 집중'이 도입됐다. 매대면적이 줄면서 판매상품 종류는 기존 2만2000여종에서 1만7000여종으로 약 20% 정도 줄었다. 상품마다 세세하게 나누어져 있는 용량 기준을 많이 찾는 대표 용량으로 줄였기 때문에 일반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상품의 다양한 종류는 확보했다고 김 전무는 설명했다.
자연히 카트도 두 가지 용량으로 나눠졌다.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80L의 카트와 창고형 할인점에서 볼 수 있는 330L의 카트 중 자신의 쇼핑패턴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대용량을 많이 사는 고객이라면 더 큰 카트를 선택하면 된다.
대표 상품인 세계맥주나 빵, 축산의 경우 슈퍼나 마트에서처럼 선택해서 골라담는 방식의 고객의 자율성은 살리되, 대용량으로 살 수 있도록 번들도 옆에서 파는 방식이 동시에 진행됐다. 창고형 할인점이 갖춘 가성비 상품을 들여놓지만 고객이 원하는 만큼만 살 수 있도록 고객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빵의 경우에도 모닝빵 등을 3개 단위로도 팔고, 6개 단위로도 팔아 고객이 필요한 만큼 사갈 수 있게 했다. 수산과 축산은 고객의 주문에 맞게 자리에서 잘라주는 것보다는 다양한 용량으로 미리 손질해 매대에 진열하는 사전 포장 방식으로 바꾸었다. 의류도 사이즈별 진열을 통해 각 사이즈별로 자신에게 맞는 옷을 바로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고객 선호도가 입증된 가공식품들은 과감하게 번들로 파는 것도 전략이다. 김웅 전무는 "처음에는 팔릴까 했었는데 16개 들이 바나나우유 번들이 하루에 50박스씩 팔린다"며 "고객이 좋아하고 신뢰가 있는 제품은 번들 판매도 적극적으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라면의 경우에도 "1개씩 낱개 상품도 있고 5개입씩 들어 있는 마트형 상품도 있지만 고객이 많이 찾는 신라면, 안성탕면, 진라면, 짜파게티 4개 상품은 번들로 살 수 있도록 박스째 두었다"고 말했다.
다만 가공식품과 달리 신선식품은 대형마트와 슈퍼의 소포장을 고수했다. 이 역시 주부들의 응답에 따른 것이다. 김웅 전무는 "주부들은 채소나 과일의 경우 너무 많으면 손질해서 소분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고 해 하이퍼슈퍼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며 "신선은 마트, 가공은 대용량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창고형 매장에서 볼 수 있던 수입상품과 PB상품도 들여왔다. 홈플러스 스페셜에서만 단독 판매하는 상품 수는 2400여개에 달한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에서 들어온 과자, 젤리, 주방세제와 홈플러스가 새로 시작한 PB제품 '심플러스'도 눈에 잘 보이는 자리에 진열됐다. 조성민 홈플러스 이사는 "치즈볼, 초콜릿, 감자칩 등 심플러스 상품들이 매우 잘 나가고 있다"며 "수입젤리 등 고객이 원하는 수입상품도 많이 늘렸다"고 강조했다.
종합하면 고객이 필요한 상품을 고객이 필요한 용량에 따라 사갈 수 있게 세심한 배려가 있었다. 할인점에 따로 가지 않아도, 마트에 따로 가지 않아도 한 곳에서 쇼핑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특히 신선식품과 대용량 가공식품을 함께 가져간 것이 주효했다.
◇ 직원의 진열횟수 줄여 윈윈…목동점도 매출 2배 예상
창고형 할인점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직원들의 수고도 줄었다. 박스째 팔레트로 갖다 놓을 수 있어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진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특히 생수와 휴지처럼 부피가 큰 상품의 경우 고객이 팔레트 내 상품을 모두 구입해 소진할 때까지 추가로 진열하지 않는다.
기존 대형마트에서는 매대에 진열된 상품이 조금만 비어도 점포 직원들이 상품을 채워 넣는 이른바 '까대기' 작업을 수시로 진행해야 했다. 홈플러스 스페셜 매장에서는 이런 업무를 줄이고 박스 단위(RRP·Ready to Retail pakage)나 팔레트 진열 방식으로 직원들이 좀 더 수월해졌다.
일손은 줄었지만 홈플러스는 직원의 감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인력들의 효율적인 배치가 가능해졌으며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방식은 유럽의 초저가 슈퍼마켓 체인 '알디'와 '리들'의 운영방식에서 벤치마킹한 것으로, 직원의 업무 강도를 줄이는 방식이다.
앞으로 홈플러스 스페셜은 점차 전국 홈플러스에 확산될 예정이다. 대구점과 부산점에서 매출이 2배 뛰는 마법을 전국 핵심 매장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오는 13일 홈플러스 대전점이 홈플러스 스페셜로 탈바꿈해 문을 열 예정으로, 다음달 말까지 10개 점포를 전환하며 올해 안에는 20개 점포로 확대한다.
조성민 이사는 "매장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것이어서 초기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매출이 확 늘기 때문에 홈플러스 스페셜을 늘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목동점의 경우 대구점과 부산점처럼 2배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일순 사장은 "변화하는 대내외 유통 환경 속에 고객을 감동시키는 진정한 가치와 우수함으로 다가겠다는 집념과 각오를 홈플러스 스페셜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구현화 기자 ku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