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에서 출발한 버스는 2시간여를 달려 윈더미어에 도착했다. 점심 무렵이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 식당으로 바로 이동했다. 램프라이터(Lamplighter)라는 식당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베란다에 내놓은 탁자에는 어린 아들과 함께 음료를 마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겹다. 점심 메뉴는 소고기를 다져 양념한 것에 감자를 얹어 찐 코티지 파이로, 이 지역 전통음식이다.
윈더미어가 속해있는 호수지역은 영국의 북서부에 있는 컴브리아(Cumbria)에 대부분 위치한다. 영국 내 최고봉 스카펠 파이크(Scafell Pike, 해발 978m)가 있으며, 전체 지역이 해발 3000피트(914.4m)를 넘는 산악지역이다. 1951년 5월 9일에 영국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호수지역은 동서로 51㎞, 남북으로는 64㎞에 달하며, 면적은 2362㎢에 달한다.
호수지역에 흩어져 있는 계곡은 200만 년 전에 빙하가 고원에서 흘러내리면서 땅을 깎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부분 U자형 단면을 보인다. 계곡 위 산머리에 평평한 지대가 흩어져 있다. 호수 지역 안에는 윈더미어호수, 글라스미어호수를 비롯해 모두 19개의 호수가 있다.
호수지역은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영국문학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토마스 그레이(Thomas Gray)는 1769년 발표한 ‘거창한 여행(Grand Tour)’에서 이 지역을 소개했다. 그리고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야말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호수지역에 관심을 갖게 한 대표적 문인이다.
80년의 삶 가운데 60년을 호수지역에서 살면서 이 고장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그는 호수시인으로 알려졌다. 20세기 초반 피터 래빗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유명한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 역시 호수지역의 힐탑에 있는 농장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번잡한 도시 리버풀을 떠나 윈더미어에 도착하면서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런던을 떠나 윈더미어를 여행한 느낌을 이렇게 적었다.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하거나 수심에 잠겨 있을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보통에게 이런 영감을 준 것은 워즈워스의 시 ‘수선화’였다. 특히 ‘내가 가끔 안락의자에 누워 / 마음을 비우거나 사색적인 기분에 잠겼을 때 / 수선화들은 그 내면의 눈앞에 번쩍하고 나타난다…… / 그러면 내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 수선화와 어울려 춤을 춘다.’라는 마지막 연이 그랬다.
점심을 마치고, 워즈워스의 시작(詩作)에 영감을 준 윈더미어의 호수를 보기 위해 나섰다.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윈더미어호수에서 크루즈를 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배를 타는 곳에는 우리 일행은 물론 중국인들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적어도 워즈워드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이 태동된 원더미어 지역이 오염되는 모습 같아 안타깝다. 윈더미어를 비롯한 호수지역이 이처럼 밀려든 사람들로 시끌벅적하게 되리라는 것을 워즈워스나 존 러스킨은 예상이나 했을까?
1844년 워즈워스는 호수지방의 남동부 끄트머리인 켄달까지 들어와 있던 철도노선을 윈더미어호수까지 연장하려는 계획이 추진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일간지 ‘모닝포스트’에 이를 성토하는 글을 실었다.
그는 “푸르른 들판, 맑게 흐르는 강물, 풍요로운 숲, 과수원 등 보통의 전원풍경은 누구에게나 사랑 받고 있지만, 이를 넘어선 미의식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위산, 벼랑, 격류 등 정말로 이 호수지방을 두드러지게 하는 숭고한 미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은 하늘이 준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교양이 몸에 배는 사이에 길러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어지는 문장이다. 그는 “따라서 배우지 못한 하층계급 사람들이 철도에 의해 현재보다 쉽게 호수지방에 올 수 있다 해도 아무런 실질적 이익도 없다”고 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어쩌다 한번 호수지역을 구경하러 왔다고 해도 자연의 숭고함을 제대로 느낄 수 없으니 아예 올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차별적인 생각을 돌직구처럼 내뱉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존 러스킨은 한 술 더 떴다. 워즈워스를 필두로 한 윈더미어 주민들의 반대로 취소됐던 철도노선 연장계획이 30년 뒤에 다시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대도시에서의 생활에 절망한 나머지 런던을 떠나 호수지방에 머물던 존 러스킨이 반대에 나섰다. “케스윅과 윈더미어의 강가에 어리석은 여행자 무리가 부대에서 내팽개쳐진 석탄처럼 털썩 주저앉아 술 한 잔 걸치면서 헬베린의 산을 바라보는 모습은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다.”
워즈워스나 러스킨의 독설을 읽다보니 스쳐지나 듯 윈더미어 구경에 나섰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호숫가에 털썩 주저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소란을 떨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블록홀 국립공원(Brockhole National Park)의 윈더미어(Windermere)에서 앰블사이드(Ambleside)까지 50분 동안 배를 타면서 감상한 호수 주변풍경은 탄성을 내뱉기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저 호수 위에 부는 삽상한 바람을 맞으며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언덕과 그 언덕 위에 떠있는 구름이 얼마나 조화로운가를 마치 워즈워드가 된 것처럼 느껴보려 했다.
선착장을 떠난 배 위에서는 호숫가에 수선화가 피어있는지 가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호숫가에 밋밋하게 솟아오른 언덕 위로 마치 무지개가 걸려 있는 것만 같아 그의 시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를 암송해본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 내 가슴은 설레느니, /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 쉰 예순에도 그러지 못한다면 /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호수에 떠있는 백조와 오리들의 모습에서 한가함을 느끼다가도 호수 위에 범람하고 있는 보트, 보드 심지어는 수상스키족을 보면서 워즈워스가 지하에서 통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거나 워즈워스나 러스킨의 영향을 받은 옥타비아 힐, 로버트 헌터, 하드윅 론슬리, 세 사람의 노력으로 1895년 1월 12일 <영국 내셔널트러스트>가 발족하게 됐다.
내셔널트러스트의 활동이 힘을 얻어가면서 일부 호수와 경관이 뛰어난 곳을 포함해 전체 면적의 4분의 1을 내셔널 트러스트가 소유하고 있다. 물론 윈더미어 지역에는 이미 철도가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고풍스러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것도 내셔널트러스트 덕분이다.
윈더미어호수를 건넌 배는 그라스미어(Grasmere)에 도착했다. 워즈워스와 그의 여동생 도로시가 1799년부터 1808년까지 살았던 도브코티지(Dove Cottage)가 있다. 워즈워스는 이곳에서 평범한 삶이었지만 깊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곳에서 사는 동안 ‘수선화’,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등의 명시와 ‘서곡’의 일부를 썼다.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도브코티지를 밖에서 구경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일정에 여유가 생겨 희망하는 사람들은 10파운드를 내고 도브코티지 내부를 구경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입장료를 내려고 내밀었던 20파운드 지폐가 구권이라서 받지 않는다고 했다. 10년 전 런던출장길에 쓰고 남은 돈이 80파운드나 되는데 그 사이에 화폐개혁이 있었던 모양이다. 망했다.
워즈워스는 평생을 여동생 도로시의 시중을 받으며 지냈다. 심지어는 시작(詩作)까지도 워즈워스가 구술하고 도로시가 받아쓰는 식이었다고 한다. 워즈워스가 도로시의 친구 메리와 결혼해서 이곳에서 살았는데 메리의 여동생 사라까지 같이 사는 대가족이 됐다.
야트막한 언덕의 끝자락에 자리한 아담한 2층 건물의 도브코티지에는 좁지만 아늑한 정원도 있고, 뒷곁의 언덕에도 역시 정원을 만들었다. 언덕 중간에는 멀리 그라스미어호수까지 볼 수 있는 전망장소가 있다. 건물 안에는 워즈워스 일가가 사용하던 커피기계를 비롯해, 일상 집기는 물론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돼있다. 1798년 ‘서정담시집(Lyrical Ballads)’을 같이 펴낼 정도로 돈독했던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와의 관계를 보이는 자료들도 다수 볼 수 있다.
계관시인인 워즈워스는 당연히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묻혀야 옳았겠으나 도로시의 반대로 글라스미어의 공동묘지에 있는 가족묘역에 안장됐다. 도브코티지를 돌아본 뒤 워즈워드의 묘소까지 구경했다. 묘지입구에는 사라의 진저브래드 만드는 방법을 이어받았다는 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