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상’속 손예진이 맡은 하채윤은 어떤 사람일까. 손예진의 말을 빌면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협상가’다. 인질극을 면했을 때 이른바 ‘타율’이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경찰 내부에서도 인정받고, 인질범에 대한 공감능력도 뛰어나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예진은 “제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캐릭터라 설렘이 컸다”고 ‘협상’에 임했던 자세를 전했다.
‘협상’속 하채윤은 배우라면, 그리고 여배우라면 특히 욕심날 법한 캐릭터다. 작품 내적으로는 정의로우면서도 공감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며 극중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 외적으로는, 최근 충무로 대작 영화 중 드물게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극을 주도적으로 끌어간다. 극의 러닝타임동안 관객들이 가장 많이 보는 화면은 손예진의 클로즈업이며, 그는 눈빛 하나로 극의 긴장감을 지휘해야 했다.
“기간은 다른 작품에 비해 짧았지만 너무 힘들었어요. 촬영 기간이 더 길었으면 못 찍었겠다 싶을 정도로요. 제가 본 한국의 범죄물과 스릴러 영화, 오락 액션물 중 하채윤만큼 경찰로서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를 본 적이 많지 않았어요. 배우로서나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나 굉장히 반가운 캐릭터였죠. 신선하기도 했고요. ‘협상’ 시나리오는 분명 좋았지만 하채윤이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제가 이 시나리오를 매력있게 느꼈을지 잘 모르겠어요. 여주인공이 경찰로서 능동적으로 애쓰는 모습들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협상’은 모니터 하나로 상황이 진전되는 극의 특성상 배우들의 부담감이 컸다. 클로즈업과 모니터 사이로 전달돼야 하는 긴박감과 긴장감, 속도감을 모두 자리에 앉아 해내야 했다. 처음에는 흥미로움과 설렘으로 임했지만 찍을수록 힘들었다고 손예진은 털어놨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인질범인 현빈 씨와 협상을 계속 해야 하잖아요. 여느 스릴러와 달리 범인을 잡으러 나선다거나 뛰는 식의 행동으로 속도감을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떨림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표현돼야 했고 집중도 엄청나게 필요했어요. 감정을 끌어올린 상태를 촬영기간 내내 유지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죠. 하지만 찍어 놓고 나니 캐릭터가 너무나 생생하게 나온 것 같아요.”
벌써 데뷔 20년차. 능숙해 질 법도 한데 카메라 앞에 서면 여전히 떨린다. 손예진은 “관객을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 중 하나가, ‘가상의 극을 얼마나 진실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연기해 관객들을 몰입시킬까?’하는 고민이에요. 예를 들면 최근 개봉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만 해도 판타지 로맨스잖아요. 사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저는 어쨌든 관객을 몰입시켜야 하죠. ‘협상’도 마찬가지예요. 살면서 관객들이 협상가를 만나거나 인질범을 만날 일이 얼마나 되겠어요? 하지만 그 상황을 리얼하게 전달시켜야 하는 게 제 몫이에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채윤이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권력 앞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거든요. 사실 사람들이 바라는 건 거기서 박차고 나가는 거죠.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바라는 직장이 몇이나 되겠어요? 경찰이라는 경직된 조직은 더더욱 그렇죠. 채윤은 대단한 협상가가 아니라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어요. 하지만 진실된 사람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협상’은 19일 개봉한다. 15세가.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