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 소개한 그리스 정교회의 종탑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지는 이유를 건너 뛴 것이 마음에 걸린다. 발칸을 여행하면서 마지막에 베네치아를 구경한 적이 있어서 많은 부분을 설명한 적이 있다(https://blog.naver.com/neuro412/221420163259). 지금의 베네치아는 원래 이탈리아 북부를 흐르는 포(Po)강과 피아베(Piave)강이 흘러드는 베네치아만 안쪽의 석호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과 습지 위에 건설된 도시이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베네티(Veneti)사람들이 포강과 피아베 강 유역에 들어와 정착했다.
6세기 무렵 아틸라(Attila)가 이끄는 훈족이 유럽대륙의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밀려난 게르만족의 일파인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 북부로 이동해왔다. 이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베네티 사람들은 아예 베네치아만 습지에 흩어져있는 섬으로 도망쳤다. 주민들은 지도자를 뽑아 도시를 다스리는 공화제를 선택했다. 697년 최초로 뽑은 총독(Doge)은 파올로 루치오 아나페스토(Paolo Lucio Anafesto)였다.
섬에서 사는 만큼 항해술이 뛰어났던 베네치아 사람들은 상술도 대단해서 중계무역을 통해 세력을 확대해갔다. 발칸반도의 연안에 식민지를 건설할 정도로 세력이 확장되면서 섬들로 구성된 본국의 영토도 확장이 필요해졌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썰물 때면 물 위로 드러나는 갯벌을 이용하여 주거공간을 넓혔다.
식민지였던 발칸지역에서 실어온 길이 4미터 정도의 통나무를 갯벌에 촘촘히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나무 기단을 쌓은 다음에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를 짓기 위하여 들어간 나무말뚝이 무려 110만6657개나 됐다니 대단한 역사(役事)였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마린 사누도(Marin Sanudo)는 베네치아를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힘으로’ 건설된 도시라고 했나보다.
발칸여행길에 왔던 베네치아를 구경할 때는 놓쳤던 부분들을 챙겨보려고 한다. 도서관 쪽을 향한 총독궁 아케이드의 7번째 기둥의 위쪽 2층 기둥에는 유일하게 원형머리장식을 새겼다. 양 옆에 사자가 호위한 가운데 솔로몬의 의자에 앉은 여성으로 도시 최고의 미덕인 ‘정의’를 상징한다. 오른 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나는 공정함과 강함에 군림하며, 바다는 나의 분노를 씻어 내린다.(FORTIS IUSTA TRONO FURIAS MARE SUB PEDE PONO)”라는 명문이 적힌 두루마리를 펼쳐들고 있다.
총독궁을 지나면 산마르코 성당이다. 산마르코성당은 총독의 개인성당으로 출발하였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모셔졌던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828년 베네치아로 옮겨졌다. 이를 계기로 베네치아의 총독은 마르코 성인을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 정하고, 성인의 유해를 모실 성당을 총독궁 옆에 짓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아마세아의 테오도로 성인이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었다.
콘스탄티누폴리스(지금의 이스탄불)에 있는 성 사도 대성당을 모방해 짓기 시작한 산 마르코성당은 832년에 완공됐다. 하지만 이때 지은 성당은 976년에 발생한 폭동에 불타고 말았다. 지금의 성당은 978년에 재건된 것으로 1063년부터 1094년에 이르기까지 보완한 것이다. 1807년부터는 베네치아교구의 주교좌성당이 됐다.
4년 전에 갔을 때는 성당의 오른쪽을 천막으로 가리고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외관 공사가 마무리돼 산뜻한 모습이었다. 큰 아이가 곤돌라를 타는 사이에 필자는 아내와 함께 산마르코 성당 안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여전히 성당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성당에 들어서 호사스럽게 치장된 내부를 보면서 줄을 설 이유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바닥에는 도자기로 타일을 깔았고, 벽도 금빛 모자이크로 된 그림으로 장식돼 있었다. 황금과 청동, 유리를 비롯한 값비싼 광석을 이용해 약 8000㎡에 달하는 공간을 고딕양식과 비잔틴양식으로 장식한 모자이크는 예수의 삶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황금의 교회(Chiesa d'Oro)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쉽게도 사진촬영이 금지돼있다.
성당 안에 있는 보물실은 또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입장료는 3유로. 황금으로 만든 기물과 유리 기물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돈을 낸 탓인지 사진촬영이 허용된다. 보물실을 구경한 다음에는 전면 파사드의 2층 테라스를 구경했다. 5유로를 더 내야했다. 2층 테라스에는 4차 십자군 전쟁 때 이스탄불에서 가져온 ‘콰드리가(quadriga)’가 올려져있다.
콰드리가는 말 네 마리가 끄는 이륜전차로 고대 로마시절 전차경주에서 사용되던 것이다. 여기 있는 ‘콰드리가’는 네 마리 말의 역동적인 모습을 청동으로 주조한 것이다. 이처럼 베네치아에는 4차 십자군 전쟁 때 이스탄불을 점령하고 약탈해온 동로마제국의 보물들이 꽤 있다. 원본은 성당 내부의 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테라스에 있는 것은 사본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을 나서면 광장 왼쪽에 높다란 붉은 색의 종탑이 서 있다. 98.6m 높이의 종탑은 비교적 단순한 모양으로 한 변의 길이가 12m인 정사각형의 밑면 위에 홈이 있는 벽돌을 50m 높이로 쌓은 후 종탑을 둘러싼 개랑을 만들어 올렸다. 개랑 위의 입방체의 외벽에는 마르코성인의 사자와 베니스 최고의 미덕인 정의를 나타내는 여신의 모습을 새겼다. 그 위로 피라미드 모양의 첨탑을 덮었고, 꼭대기에는 가브리엘 천사의 모습을 한 황금 풍향계를 달았다.
지금의 광장 대부분을 차지하던 도크의 감시탑 혹은 등대로 사용하기 위해 9세기 초반 건설을 시작해 12세기 무렵 완공했다. 이후 여러 차례 번개와 지진 등으로 인해 손상을 입었다. 1513년에 복구된 이후로도 번개의 피해를 입다가 1776년 피뢰침을 장착했다. 하지만 1902년 7월, 북쪽 벽에서 시작된 균열로 인해 종탑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금의 종탑은 복원작업 끝에 1912년 4월 25일 마르코 성인의 축일에 준공된 것이다.
종탑에는 다섯 개의 종이 있는데 각각의 의미가 다르다. 렝기에라(Renghiera) 혹은 말레피쵸(Maleficio)라는 종은 사형의 집행을, 메짜 테르자(Mezza Terza)는 상원의 개원을, 노나(Nona)는 정오를, 뜨로티에라(Trottiera)는 주요 협의회의 구성원들의 회의 시작을 알렸다. 가장 큰 종인 마랑고나(Marangona)는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을 알렸다. 산 마르코 대성당의 종탑은 1609년 8월 21일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베니스 총독 안토니오 프리울리(Antonio Priuli)에게 그가 발명한 망원경을 시전한 장소로 유명하다.
큰 아이가 곤돌라를 타고 돌아올 무렵, 종탑을 구경하러 갔다. 종탑의 전망대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표를 사려는 사람들이 종탑 계단 아래까지 줄을 서고 있었다. 창구에 이를 때까지도 아들로부터 연락이 없어 뒷사람에게 양보하기를 몇 차례나 한 끝에 표를 끊었다. 그리고도 한참을 기다린 뒤에 온 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거친 바람이 몰아친다.
종탑에서는 사방을 돌면서 베네치아를 굽어볼 수 있다. 네모반듯한 산 마르코 광장과,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집들의 붉은 기와지붕들, 그랑 카날 입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la Salute)은 물론 멀리 있는 작은 섬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산 조르조 마조레성당(Chiesa di San Giorgio Maggiore)도 손에 잡힐 듯하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지고, 갑자기 비바람이 들이치면서 추위가 심해지는 듯해 종탑을 내려왔다. 날씨가 청명했더라면 리도섬 너머로 멀리 아드리아 해까지도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종탑에서 내려와 한기를 덜기 위해 플로리안 카페에서 핫초코를 마시기로 했다. 둘러보니 한국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데 음료를 어디서 마시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다. 작은 방에 앉아 마시는 경우에는 주문하는 곳에 서서 마시는 경우보다 당연히 값을 더 치러야 한다. 시간 여유가 많고 카페의 분위기와 직원들의 서비스를 즐기려면 작은 방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우리 일행처럼 자유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고 그 유명하다는 핫초코 맛을 보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정도라면 주문하는 곳에 놓인 작은 탁자에 앉아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날씨가 춥고 변덕스러운 탓인지 광장에 마련된 테이블을 위한 악단연주는 없는 듯했다. 오늘은 산 마르코 광장에 문을 열고 있는 카페 네 곳을 모두 돌아봤다. 네 곳 중에서 카페 플로리안이 가장 크고 내부 장식도 화려해 보였다. 정장을 차려 입은 직원들은 근엄하고 자부심이 넘치면서도 친절하다.
카페 플로리안에서 나와 산 마르코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을 돌아가면서 상점들을 구경했다. 품은 물론 다양한 선물용 소품들을 파는 작은 가게들도 많았다. 그 가운데 추억의 올리베티 타자기를 파는 가게를 만났다. 컴퓨터에 밀려 사라진 것으로 알았던 타자기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어 놀랐다.
자유시간이 끝나고는 수상택시를 타고 그랑카날 투어에 나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객실 안에서 가이드 설명을 들었다. 카날에 늘어선 건물의 유래는 저번에 웬만큼 들어 알고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정리하면서 생각해보니 잘못했다. 흐린 날의 운하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봤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초보딱지를 떼지 못한 여행자다.
공영주차장 가까이 부두에 닿은 택시를 내려 현지가이드와 작별하고 바다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지난 번 여행 때 갔던 곳이 아니었다. 지난번에는 독도식당이었던가? 하지만 옆에 발사믹과 엑스트라버진급 오일을 판다는 웰빙상품을 파는 가게가 있는 공통점은 있다. 인솔자가 와인을 한 병 건넸다. 이번 여행을 담당해준 여행사 권대표의 선물이란다. 카톡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저녁은 예고와는 달리 비빔밥에 불고기였다. 재료가 달라 한국에서 먹는 맛을 제대로 내지는 못했지만 매콤한 고추장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된장국은 일품이었다. 불고기는 달고 짠 맛이 조금 아쉬웠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다시 버스로 20여분을 달려 숙소에 들었다. 이날은 일찍 숙소에 든 셈인데 하루의 일정이 그리 힘들지 않았음에도 시차로 인한 피곤함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