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근원적 핵폐기물 처리가 불가한 탓에 ‘화장실 없는 집’으로 불리는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를 더 짓자는 주장이 최근 야당을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나오며 연초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야당을 비롯해 원전 추가 건설이나 건설 재개를 요구하는 이들의 주장은 미래먹거리를 없앤다거나 원전생태계 또는 관련 산업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원전 주요 부품·작업복 등 일체의 원전 폐기물)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안은 고민하지 않은 모양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1954년 구소련에서 최초의 원전이 가동된 이후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안전하게 처리·보관하는 방법이 개발되지 못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란 노출될 경우 즉사의 위험이 있는 고독성 물질이다. 이 폐기물은 10만년의 시간이 지나야 자연 상태 수준의 미미한 방사능을 방출한다. 이 탓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원전은 ‘화장실 없는 집’, ‘꺼지지 않는 불’ 등으로 불린다.
이를 처리하는 방식은 글로벌 선진국도 땅속에 파묻거나, 겨우 중간시설에 보관하는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당 폐기물들을 국내 25개(고리 1호기 포함) 원자력 발전소 임시저장고에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야당과 소위 원피아(원전+마피아) 세력들은 ‘묻지마 원전찬성론’으로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탈원전’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이들은 '민생 파괴',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 붕괴' 등의 이유를 들어 원전을 더 짓자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원전을 더 건설해야 한다는 쪽의 주장에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정책적 대안이나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전 세계적으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에 대한 뾰족한 답은 없으나 주요 국가들은 해결 방안 모색에 보다 적극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방사성 폐기물 문제 해결의 시작도 어려운 상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는 저장고 86.3%가 포화 상태다. 고리 3·4호기, 한울 1·2호기는 90% 이상, 고리 1~4호기는 2024년, 한빛 1~5호기 2037년, 신월성 1~2호기 2038년 등 전국의 원전 임시 저장소도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세계적 숙제이니 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고(이하 방폐장)를 지금이라도 더 지으면 될 일을 호들갑을 떤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 과거 사례를 보면 국내에서는 풀기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 1983년부터 방폐장을 건립하는 일이 아홉 차례 추진됐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느 지역의 주민도 자신의 살고 있는 곳에 중간저장시설이 들어오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1990년에는 정부가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주민 몰래 중간저장시설을 지으려다 주민들의 큰 반발에 무산되기도 했다.
이러함에도 일단 원전을 더 늘려야한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원전 내 시한폭탄’인 고준위폐기물을 보관할 방법조차 없는 상황에 영토대비 원전밀집도 세계 1위인 한국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 않을까?
게다가 현 정부 임기 동안 원전은 오히려 늘어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인 2022년 5월까지 신한울 1,2기, 신고리 4.5기 등 원자력발전소는 되려 4기 더 증가한다.
그럼에도 탈원전 비판과 함께 원전을 더 짓자고 주장하려면 방폐장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제시하고 원전 건설을 주장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는가. 물론 과거부터 방폐장 건립에 실패한 역사가 있기에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하다. 전 세계적인 숙제에 대한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관련 업계에서 ‘화장실 없는 집’으로 불리는 원전을 더 짓고자 한다면 대안에 해당하는 방폐장 문제에 대해 공론화를 하려는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
원전을 짓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이 본인 지역구에 원전을 짓거나, 방폐장을 세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념과 경제 논리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생존권이다. 대안과 대책 없이 일방통행적인 원전 건설부터 주장하는 이들은 “원전과 방폐장을 집 앞에 두실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다.
임중권 기자 im918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