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맥주시장 점유율 1위인 오비맥주가 내달 ‘필굿’을 통한 발포주 시장 진출을 천명했다. 하이트진로가 발포주 ‘필라이트’를 출시했을 당시 탐탁찮은 반응을 보였던 오비맥주가 뒤늦게 출사표를 던진 이유는 무얼까.
분명 한 기업의 의사결정에는 여러 가지 변수와 이에 대한 대응, 그리고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히 짐작컨대, 현재 국내 맥주시장은 발포주 외에 새로운 신성장동력으로 삼을만한 마땅한 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2017년 기준 국내 맥주시장 규모는 3조9078억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 국산맥주 출고량의 경우 182만3899㎘로 2013년 대비 10%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기간 수입맥주 출고량은 9만4543㎘에서 32만6978㎘로 245% 폭증했다.
가정용 맥주시장에서의 점유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13년 95%를 차지했던 가정용 시장에서의 국산맥주 비중은 지난해 74%까지 떨어졌다. 빈 자리는 수입맥주와 발포주가 차지했다. 점차 국산맥주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국산맥주의 입지가 좁아지는 근원적인 이유는 뭘까. 혹자는 대동강 맥주를 운운하며 ‘맛’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맥아가 10% 이하로 들어간 발포주가, 출시 1년 6개월만에 4억캔이 팔린 현 시장상황을 볼 때 단순히 맛만을 이유라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맥아함량이 맛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통상 ‘국산 맥주는 맛이 없다’라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을은 라거 특유의 톡 쏘는 가벼움과 싱거움을 이유로 든다. 따라서 필라이트의 성공을 볼 때 애매하게 싼 가격이 아닌 ‘압도적으로 싼 가격’이라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발포주가 아닌 일반맥주의 가격을 수입되는 맥주보다 내릴 수는 없을까. 답은 ‘없’다. 현재 우리나라 주세법은 제조원가·판매관리비·이윤이 더해진 과세표준의 72%인 주세와 이 주세에 30%가 추가된 교육세, 그리고 과세표준·주세·교육세 합의 10%가 추가된 부가세가 더해진다.
반대로 수입맥주는 과세표준에 수입 신고금액과 관세만이 적용되며 여기에 72%의 주세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맥주 수입사 중에 세관에 최대한 적은 금액을 신고한 뒤 나중에 판매관리비와 이윤을 붙이는 곳도 있다. 실제로 수입가를 100원 내릴 경우, 100원가량의 세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있다. 여기에 무역협정으로 올해부터 유럽산 맥주에 대한 수입관세가 전면 철폐돼 국산 맥주와의 세금 역차별 지적이 이어져왔다.
현재 수제맥주협회와 국산 맥주업체들이 현행 주세법상 종가세를 종량세로 바꾸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종량세는 종가세와는 다른 개념이다. 통상 업계에서 말하는 종량세는 가격이 아닌 주류에 포함된 알코올 함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말한다.
물론 종가세가 현재 국내 맥주시장의 어려움을 한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아니다. 종가세가 적용된다 하더라도 국산맥주는 수입맥주와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게 될 뿐, 제도적인 혜택으로 수입맥주를 앞서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발포주는 저성장 늪에 빠진 국산맥주 제조업체들의 발버둥일 뿐, 해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종가세가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동안 발목에 채워져 있던 쇠사슬을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시장은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현우 기자 akg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