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국가를 표방하는 정부에 전문가들이 쓴 소리를 내뱉었다. 정책 취지와 방향은 올바르지만 지금 상태로는 포용성장으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것. 이들은 여당인 민주당이 제안한 기본소득도 사실상 반대표를 들었다. 그러면서 소득격차를 줄이려면 경제구도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CCMM 빌딩 컨벤션 홀에서 ‘포용성장과 소득격차 축소방안’을 주제로 쿠키뉴스 미래경제포럼이 열렸다. 이날 주요 순서로 국회경제민주화포럼 공동대표인 유승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기조연설을,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했다.
토론에서는 김낙년 교수와 함께 이상목 기획재정부 경제구조개혁총괄과장, 최영준 연세대 교수, 김석찬 농협중앙회 농가소득정책국장, 박상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이 참여했다. 조용래 광주대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조 교수는 토론에 앞서 우리경제가 걸어온 길을 ‘압축 성장’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는 산업·민주화 조기달성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내부문제를 그대로 안은 채 성장만을 추구해온 이면을 꼬집었다.
조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 들어오면서 만성적 압축 성장체제에서 비롯된 저임금·장시간 노동 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은 출중한데 그것조차 압축적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이라며 “압축부분을 조금 더 차분하게 풀어내는 접근이 필요한데 그런 문제들이 많다”고 말했다.
첫 번째 토론자인 최영준 연세대 교수는 소득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분배혁신’을 강조했다. 최 교수는 “최저임금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근본적인 사회경제 체제를 모색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유와 안정부여가 새로운 포용경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험 일상화 시기에는 능력에 따라 보편적으로 걷어 모두에게 분배하는 게 더욱 바람직할 것”이라며 “이미 중산층은 상위 10%에 가까운 사람들을 일컫는 한국사회가 됐다”고 부연했다.
최 교수는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의원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노동임금이 아닌 사회적 임금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기본소득은 지향점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수당제도 보편성을 확대해야한다”라고 말했다.
박상인 경실련 정책위원장은 소득격차 원인으로 ▲대기업-중소기업·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자영업위기 ▲노인빈곤 ▲자산소득과 근로소득 과세불균등을 지목했다.
박 위원장은 “한국경제를 특정지은 60년대 경제재벌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소득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경제구조를 과감히 바꾸는 게 필요한 데 문재인 정부는 2년이 지나도록 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 미래에 대해 걱정과 암울한 마음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금격차를 해소하려면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 블록화와 전속 거래로 인한 단가후려치기, 기술탈취를 해소하는 경제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개혁핵심은 재벌개혁과 징벌배상 및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자영업 문제와 노인빈곤 해결책으로는 ▲기업연금 정상화 ▲직무급 중심 임금체계 개편 ▲실질적 정년연장 등을 언급했다.
박 위원장은 재분배정책도 주문했다. 그는 “현재 재분배정책은 소득격차 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며 “당분간 주거·건강·기초생계에 초점을 맞춘 선별적 복지에 집중해야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기본소득 정책에 대해서는 “때가 아니라고 생각 한다”고 밝혔다.
김석찬 농협중앙회 농가소득정책국장은 소득격차와 고령화로 성장 정체에 시달리고 있는 농업계 현실을 호소했다. 그는 청년이 찾아오는 ‘젊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가 소득성장이 절실함을 언급했다. 그는 2020년 농가소득 5000만 달성이라는 농협의 오랜 비전을 제시했다.
김 국장은 “농가경영주 절반 이상이 고령자”라며 “이런 상황에서 농촌과 농업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청년이 가지 않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2020년까지 5000만원 달성은 잠정이지만 농가소득을 올리는 성장 중간지표”라고 설명했다.
이어 “농업인이 잘 살지 않으면 농협이 많은 역할을 해도 농업인과 많은 관계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 한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농가가 무너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상목 기재부 경제구조개혁총괄과장이 포용성장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혁신이 이뤄줘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정부가 한두 가지 대책을 가지고 저성장 고착화, 양극화 등 심화되는 오래된 트렌드를 바꾸기는 어렵다”라며 “국민 모두가 생각을 바꾸고 변화하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정부가 주장하는 소득주도 성장은 분배만 강조되는 게 아닌 성장과 함께 이뤄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임을 설명했다. 그는 또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이 상충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소득주도 성장으로 인적자본에게 충분히 투자하고 국민에게 안정적인 삶 기반이 갖춰질 때 생산성이 높아지고 혁신에 나설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김낙년 교수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정부 대응력 부족을 꼬집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것 중 포용성장, 공정경쟁, 혁신성장은 의미있는 걸로 보인다”면서도 “그런데 사실은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여러 가지 정책 제안들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충돌하는 건 다 마찬가지”라면서도 “구체적인 현상에 대해 정부가 학습을 하고 또 문제가 있으면 그걸 인정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으려는 게 잘 되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점이 개선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유승희 의원은 “기본소득을 도입할 때가 아니라는 것에 공감한다”면서 “기본소득을 포함해 소득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이 활발히 논의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판은 받는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지만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소득격차를 어떻게든 축소하는 문제는 결국 사회안전망을 적극적으로 깔아가는 문제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금종 기자 so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