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조9602억원’
지난해 국내 면세점 총매출이다. 불경기에 신음하는 유통가에서 면세업계를 바라보면 ‘황금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법 하다. 성장세도 꾸준해 업계는 올해 매출 규모가 20조원을 돌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이 같은 ‘황금알’ 이면엔 업계의 치열한 출혈 경쟁, 양극화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한화갤러리아가 끝내 면세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면세사업에서 더 이상 미래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표현은 면세업계를 대표하는 상징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2015년 당시 면세사업은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기업들도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한화갤러리아는 면세 사업에서 철수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갤러리아가 사업권을 획득한 2015년 이후 시내 면세점의 수는 6개에서 13개로 3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했고, 예상치 못한 중국발 사드 제재라는 외부 변수가 발생하자 이를 기점으로 사업자 간 출혈 경쟁이 시작되며 면세 시장 구조가 왜곡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실제로 현재 면세업계에는 두 가지 그림자가 존재한다. 따이공(중국 대리구매 상인)과 양극화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늘 같이 따라다닌다. ‘따이공’ 현상의 단초는 사드 갈등이었다. 사라진 유커(단체관광객)의 자리를 대신해 되팔이 상인인 따이공 들이 등장했고 그 규모는 기업화 수준에 이르렀다. 면세점 고객의 70%가 따이공으로 추정된다.
분명, 나쁘게 만도 볼 수 없지만 커지는 의존도는 업계의 잠재적 폭탄이다. 따이공의 향방에 따라 면세점의 운명이 갈리게 됐다.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면세업계의 출혈 경쟁은 이젠 꽤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송객수수료’ 뿐 아니라 선불카드도 논란이 일었다. 머니파워는 곧 면세점의 경쟁력이요. 이 과정에서 면세점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했다.
장사꾼인 따이공들은 최대 효율을 추구한다. 다양한 품목의 물건과 재고가 많이 있는 대형 면세점을 선호하고 동선을 최대한 줄인다. 이런 이유로 ‘면세점 빅3’ 롯데 신세계 신라 등 대형 면세점이 몰려있는 강북으로 몰리는 것이다. 빅3의 치열한 경쟁으로 강북권이란 견고한 성도 형성됐다. 따이공 입장에선 매력적인 곳이다.
상대적으로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면세점은 ‘따이공’의 수혜를 입기 힘들다. 애초에 여의도에 위치한 갤러리아면세점은 따이공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았다. 3년 5개월 동안 쌓인 적자는 1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면세점 당첨이라는 축배는 독배가 됐다. 사드사태로 인한 ‘따이공’의 등장으로 면세업계의 재편이 본격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소중견 면세점을 중심으로 사업권을 내놓는 곳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시내면세점을 더 늘린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어 경쟁 심화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면세사업은 과연 아직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국내 면세업계가 한순간 터져버리진 않을지 두렵다. 거위의 배가 서서히 갈라지고 있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