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모바일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국내 게임 이용자들의 시선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많은 이용자들은 IP(지식재산권)를 재활용한 게임, 노골적으로 과금을 유도하는 게임들에 지쳐있다. 재미는 없는데 다른 게임으로 눈을 돌릴 선택권 조차 없다. 한국에서 예전처럼 감동을 줄 수 있는 ‘대작’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만 커지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모바일 게임 강국이 됐나
한국은 과거부터 유독 게임에 대해 박했다. 게임은 학업에 방해되는 것이라는 기성세대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만연했다. 오락실은 불량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90년대 PC와 휴대전화 보급이 증가하면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도 늘어났다. 이와 함께 국내 게임 산업도 발전했다. ‘리니지’, ‘바람의 나라’, ‘창세기전’ 시리즈,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등 명작으로 꼽히는 게임들이 대거 출시됐으며 국내 최초 모바일 게임사 컴투스가 등장했다.
2000년대 말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국내 게임 산업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하드웨어의 발전과 함께 모바일 게임의 장르도 확장됐다. 그래픽 성능이 대폭 향상되면서 MMORPG, 수집형 RPG 등 새로운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바일 게임 산업이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자 국내 게임사들이 대규모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가 등장하면서 모바일 게임 시장의 수익 구조도 변했다. 게임사들은 과금이 게임내 승패와 직결되는 ‘페이 투 윈’ 시스템으로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게임사들은 게임을 일단 무료로 제공하고 게임 내에서 결제하게 만드는 인앱결제 방식을 채택했다. 특히 MMORPG, 수집형 RPG 장르는 게임 이용자들의 과금을 유도하기 좋은 구조로 발전했다. 게임은 공짜로 제공하지만 수월하게 즐기기 위해 과금은 필수 요소가 됐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게이머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같은 게임들이 유행을 타면서 독창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른바 양산형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고 게이머들의 회의감은 깊어졌다. 게임 운영 정책과도 잦은 마찰이 일어났다.
게임사들의 과금 전략은 모바일 게임의 주 소비층이자 바쁜 시간을 쪼개 게임을 즐겨야 하는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변해갔다. 과금을 하면 남들보다 더욱 빠르게 성장 할 수 있는, 이른바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해외 "게임은 문화"…한국 "게임은 돈벌이?"
게임 업계의 가장 대표적인 상으로 ‘올해의 게임상(GOTY)’이 있다. GOTY는 각 매체 또는 주요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게임들을 집계해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게임에게 수여된다.
게임, e스포츠 강국을 표방하는 한국이지만 역대 GOTY 수상작 중 국산 게임은 찾을 수 없다.
‘갓 오브 워’,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언차티드4’, ‘위쳐3’ 등 해외 게임들 일색인 가운데 국산 게임으로는 유일하게 ‘배틀그라운드’ 만이 2017년 5위로 후보에 오른 게 전부다.
해외 게임들이 GOTY를 휩쓸고 있는 비결은 게임에 대한 인식 차이에 있다.
국내와 다르게 해외에서는 과거부터 게임이 하나의 문화로 인정 받는 분위기다. 콘솔 게임의 대중화도 빨랐고 마치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게임 산업도 자리를 잡았다.
북미·유럽 같은 경우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오락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디즈니, 루카스아츠, 워너브라더스 등 대형 기업들과 영화사들이 게임 산업까지 손을 뻗쳤다.
90년대 세계 게임 시장을 주름잡은 일본의 경우 소니, 닌텐도와 같은 대형 기업들은 게임을 하나의 문화 수출품으로 만들어냈다. '포켓몬', '슈퍼 마리오' 등 유명 게임 IP는 영화, 캐릭터 브랜드를 구축하고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덕분에 종합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닌 게임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일러스트와 음악, 스토리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어떤 게임은 흡사 그 자체만으로 영화와 소설 등이 주는 감동을 뛰어 넘는다. 영화와 책을 소비하는 주체는 수동적이라면 게임을 소비하는 주체는 보다 더 능동적이고 상호적이다.
완성도가 높으니 게임 이용자들의 지갑도 자연스레 열린다. 앞서 언급한 인앱 결제 방식과는 다르다. 여전히 DLC(다운로드 콘텐츠) 형태로 출시되는 게임들이 많지만 이용자들의 만족감은 상당하다.
한국도 이제 돈 버는 게임이 아닌 잘 만든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국내 게임사들은 과거 무분별한 불법 복제 문제로 패키지 게임 개발 의욕을 잃었고 개발 비용에 비해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PC 온라인 게임 경쟁에 시달리다 모바일 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이제 모바일 게임 시장은 포화 상태다. 이미 업계에서는 중국산 게임들에 추월 당했다는 푸념도 심심찮게 들린다. 수익성에만 연연하며 양산형 모바일 게임에 집중할 때는 지났다.
과금 유도로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중국 게임 시장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국제 게임쇼 ‘차이나조이 2019’에는 소니, 닌텐도, 엑스박스가 모두 참여했다. 특히 소니는 ‘차이나 히어로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면서 중국 게임사와 협력해 개발 예정 신작 6종을 공개했다. 닌텐도는 중국 게임사 텐센트와 손잡고 콘솔 게임 개발 의지를 보였다.
스팀, 에픽게임즈스토어와 같은 ESD의 등장으로 해외 진출 창구도 열려있다. 닌텐도 스위치의 경우 인디 게임 개발사들에게도 개방 정책을 펴 접근성이 용이해졌다.
차이나조이에서 만난 한 게임 업계 관계자는 "게임사는 결국 잘 만든 게임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인 산업 성장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이른바 ‘갓겜’을 선보여야 할 때라는 것이 업계 일각의 지적이다.
변화 조짐이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블루홀은 배틀그라운드를 애초에 패키지 방식으로 출시하는 방향을 택했다. 펄어비스, 넷마블도 성공한 PC 모바일 게임을 콘솔로 이식하고 있다. 라인게임즈는 닌텐도 스위치용 ‘창세기전2 리메이크’, PS4와 PS 비타용 ‘버리드 스타즈’를 개발하면서 콘솔 시장을 노리고 있다.
문창완 기자 lunacy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