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카야 한 것을 후회해요.”
광복절 이틀 전, 서울 합정동의 한 이자카야 점주에게 들은 호소다.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로 일식집들의 매출까지 떨어지고 있는 것. 이자카야는 그동안 짙은 왜색(倭色)과 일본 주류를 판매한다는 이유로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아왔다. 세간의 따가운 눈총이 쏠렸던 터일까. 몇몇 점포들은 정문 앞에 “당분간 일본 주류를 팔지 않겠다”며 “식재료와 직원 모두 한국”이라는 안내 문구를 걸어두기도 했다.
이촌역 재팬타운의 한국인 일식집 점주들도 얼굴이 어둡긴 마찬가지. 앞서 언급했던 이들은 불매운동의 선의의 피해자로 여겨진다. 사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기자도 불매운동 초기에는 이자카야 등 일식집에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식재료와 주류를 국산으로 바꾼다 한들, 불매운동이 한창인데, ‘일본’을 소비하는 것 자체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불매운동은 ’반일‘이 아니라 ‘반아베’라는 외침을 접하고 난 후부터다.
일각에서는 그럼에도 일본의 과거 행패를 들어, 아직 ‘반일’에 목소리를 높여야 된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의 정서를 고려해 이 말도 틀렸다 할 수 없지만, 우린 그 타깃을 ‘또렷이’, ‘선명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앞선 사례들과 같은 ‘사각지대’를 줄이고 ‘오발’을 막는다. 반일은 종착역이 없는 기차와도 같다. 증오라는 감정에 끝이란 없는 탓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반일’ 이라는 허공의 총질보다, ‘반아베’라는 결정적인 조준 사격이 필요한 이유다.
‘반일’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 쉬운 증오와 분노에 그 기반을 둔다. 수많은 이익집단들이 이 순수한 감정을 각자의 입맛에 맞게 이용하려 든다.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 인기를 높이기 위해, 혹은 표를 많이 받기 위해. 일례로 최근에는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이 광화문과 시청 명동 일대에 일본 제품 불매운동 ‘노 재팬’ 깃발 1000여개를 설치하려다 6시간여 만에 취소하는 촌극을 빚었다. 국민주도의 불매운동에 왜 관이 생각 없이 끼어드느냐는 것이다.
코앞의 인기에만 눈이 멀어, 불매운동의 ‘본질’은 잊은 채 섣부르게 머리를 쓴 탓이다. 서양호 청장이 진정 지역민을 생각하는 애국자였다면, 오히려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을 반갑게(?) 맞았어야 한다. 관광 온 일본인들에게 과거 일제의 위안부, 강제징용 등의 만행을 알리고, 아베 정부의 얼토당토않은 무역 규제의 부당함을 알리는 관광 캠페인을 펼쳤다면 현명한 행정의 사례로 꼽히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보편타당한 인류애(愛)에는 국가도 인종도 이념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인도 공감이 가능케 한다. 한일민간이 아베 규탄을 위해 손을 잡는 일도 가능하다. 일본의 한 평화운동가는 "아베 정권을 만든 사람은 일본인이다. 일본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아베 정부를 비판하고, 바꿔야 한다는 일본인도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라고 말한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는 아베의 폭주를 막고 이를 규탄하고 있는 세력도 상당하다.
불매운동이 한 달을 넘어서며 선의의 피해자를 생각하는 등, 반일에서 '반 아베'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을 여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도쿄 올림픽에 보이콧을 선언해야 한다.” 등의 정치적인 구호들 외치는 자들도 늘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반일’ 이라는 총질보다, ‘반아베’라는 조준 사격이 필요하다. 분노는 수단이 될 수 있어도, 어디까지나 문제를 풀기 위한 본질은 이성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한전진 기자 ist107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