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감독 이성한)는 내레이션이 중요한 영화다. 원작 미즈타니 오사무의 책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의 일부를 내레이션으로 스크린에 옮겼기 때문이다. 배우 김재철은 영화에서 방황하는 아이들 곁에 서는 선생 민재를 연기하며 내레이션의 대부분을 담당했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작품의 메시지가 영화 속 인물을 넘어서 영화 밖 관객에게도 차분하게 전달된다.
최근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재철은 민재 역할을 “나무처럼 단단하게 우두커니 연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민재를 보다 친숙하게 그릴 수도 있었지만, 묵묵히 지켜보고 손을 내미는 편을 선택한 것이다. 나무와 닮은 선생을 그리기에 앞서 김재철은 세 가지 과정을 지나쳤다. 첫 번째는 오디션이었다. 이성한 감독과 여러 작품을 함께 했지만, 오로지 오디션으로만 영화에 출연할 연기자를 뽑는 이 감독의 방식대로 이번에도 오디션을 치렀다.
“이성한 감독님께 오랜만에 인사라도 드리자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어요. 감독님 작품이라면 우정출연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며칠 뒤에 연락을 받고 다시 한번 감독님을 만났죠. 민재의 내레이션 대사를 읽었는데, 그때 마음에 드셨대요. 사실 내레이션에 대해서 준비한 건 하나도 없어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녹음 봉사를 오랫동안 해서 읽는 것을 긴장하지 않고 하는 편이에요. 햇수로 9년 정도 했는데 그동안 읽은 것들이 제 안 어딘가에 있으니, 자신감이 생겼나봐요.”
두 번째는 거리로 나간 것이다. 이성한 감독은 김재철에게 원작의 주인공 미즈타니 오사무 선생처럼 직접 거리로 나아가 아이들을 지켜볼 것을 주문했다. 작품 속에서 민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길 감정을 생각하고 정리하기 위해서다.
“처음에 거리로 나갔을 땐 낯설었는데, 지나가는 학생들을 계속 보니까 걷는 모습에 사연이 보이더라고요. 하루가 다 꺼진 것처럼 길을 걷는 친구의 뒷모습도 봤고요. 여러 모습들을 봤어요. 그런 경험이 겹겹이 쌓여 민재를 만들었죠.”
세 번째는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윤찬영, 손상연, 김민주, 김진영 등과 함께 한 단체 연습이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에 출연한 연기자들은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약 한 달간 일정한 시간에 모여 연습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 역을 맡은 배우들은 김재철을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라고 부르게 됐다.
“연습 후반부엔 이성한 감독님께서 촬영 준비로 바빠지면서 제가 단체 연습을 진두지휘하게 됐어요. 지루할 때쯤이면 연극 연습할 때 하던 ‘컵차기’도 했고 서로의 역할을 바꿔 연기하기도 했죠. 배우들의 관계가 편해지니까 연기는 자연스럽게 좋아졌어요. 서로의 거리감이 없어지고 벽이 사라지고 진짜 팀이 되는 것이 보였어요. 이번 작품이 처음인 배우들도 많았는데, 연습을 통해 평가받는다는 낯선 느낌을 지워준 것도 연기에 좋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영화 밖에서도 안에서도 아이들 곁을 묵묵히 지켰던 김재철은 관객이 따뜻하게 작품을 바라봐 주길 바란다는 바람을 남겼다. 한겨울,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작은 손난로처럼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의 따스함이 관객에게 전해지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여유가 있으면 주변을 보지 못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누군가는 봐야 하고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해볼 수 있는 영화예요. 그래서 저는 많은 분들이 우리 영화를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를 통해 아이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작품의 의미가 되는 것이니까요. 영화의 힘은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