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주제를 진중한 분위기로 풀어내는 극에도 숨 쉴 곳은 있어야 한다. 때로는 이 작은 부분이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기도 한다. 배우 인교진은 얼마 전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의 나라’에서 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인교진이 연기한 박문복이 화면에 등장해 새카만 이를 드러내며 능청을 떨면, 화면 속 인물들뿐만 아니라 화면 밖 시청도 웃었다. 자연스러운 코믹 연기에 강한 인교진의 진가가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많은 이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던 새카만 이는 인교진의 아이디어였다. 평소 아내에게 웃음을 주던 장난에서 착안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드라마 종영 후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인교진은 “캐릭터를 분석하며 외형적인 모습뿐 아니라, 문복이 어느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하는지까지 생각하며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내인 소이현 씨가 우울해할 때, 제 앞니에 김을 붙이고 장난을 치면 금세 웃더라고요. 평소에 그런 장난을 많이 쳐요.문복의 새카만 이는 그런 행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사극인데다가 문복이 군역을 오래 살았고,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는 배경이 있으니 어떻게 하면 이런 부분을 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온 생각이에요. 감독님과 작가님을 처음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어요.”
단발머리에 까만 이를 드러내며 웃는 분목을 보고 놀란 것은 시청자뿐만이 아니다. 드라마 속 분목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그날 밤 칫솔을 들고 아빠를 찾아온 두 딸에 관해 이야기하는 인교진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첫째 딸인 하은이가 첫 방송을 보고 ‘아빠가 이를 안 닦고 자서 이가 다 썩었다’면서 그날 밤 이를 닦아 주더라고요. 둘째 소은이는 이제 언니가 하는 행동을 곧잘 따라 하는데, 하은이가 제게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하면 옆에서 추임새를 넣고요. 드라마에서 제가 머리띠를 하고 나오는데 하은이가 유치원 만들기 시간에 색종이를 길게 오려 붙여 머리에 띠를 두르고 제 흉내를 내기도 했어요. 저는 딸들에게 현실에서도 TV 속에서도 웃긴 사람이에요.”
다양한 작품에서 웃음을 주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온 인교진은 “언젠가는 멋있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면서도 “지금의 모습도 마음에 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인교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웃음의 정서가 있다는 것이다.
“전혀 다른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꾸는 작업도 재미있겠지만, 저만이 할 수 있는 저만의 코드가 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문복을 비롯해 지금껏 제가 해왔던 역할엔 인교진이라는 배우의 개인적인 모습과 정서가 녹아 있죠. 재미있는 역할을 맡아 어떻게 변주할지 고민하고 가지치기해나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에요.”
소탈하게 웃으며 ‘나의 나라’와 문복에 관해 이야기하던 인교진은 예능과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솔직하고 진지한 얼굴로 답변을 이어갔다. 매사에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보고 힘을 얻는 것은 자신에게 늘 진심 어린 응원을 해주는 배우자 덕분이라는 것이다.
“부부 예능 ‘동상이몽’에 나온 모습으로 저를 기억해주시는 경우도 많아요. 관심을 받는 직업이니까 많은 분들이 저와 제 가족의 모습을 좋아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예능을 통해서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됐고 그 부분은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신기한 게 사람이 정말 말한 대로 되더라고요. 예능 촬영을 하며 아내에게 좋은 말을 한마디라도 더했던 것이 관계엔 긍정적으로 작용한 거죠.”
웃음 많고 긍정적인 인교진에게도 고민은 있다. 무려 20년째 이어져 온 고민이다. 그는 “연기자로서의 고민은 20년째 계속되고 있다”며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2000년 MBC 공채로 일을 시작해서 신인이라는 말을 10년 정도 들었죠. 그 시절이 길었지만 제 가치를 알아주고 높게 평가 해주는 아내 덕분에 힘을 얻었어요. 그래서 제 역량을 펼칠수 있는 기회가 온 지금이 행복해요. 앞으로도 가늘고 길게 배우 인교진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키이스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