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급여화를 논의할 협의체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지만, 정부 당국자가 당장 내년부터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혀 뒷말이 나오고 있다.
발단은 지난달 21일 대한한의사협회가 주관한 ‘한의약 발전을 위한 정책 토론회’ 자리. 여기서 보건복지부 이창준 한의약정책관은 “12월에 ‘첩약 급여화’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하고 내년 시범사업을 진행하겠다”고 언급,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반발하는 형국이다.
당장 대한약사회와 대한한약사회는 발끈했다. 9월6일 이후 첩약급여화 논의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도 없이 시기를 정해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통보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협의체에서 자신들이 ‘들러리’냐며 반발했다.
김종진 한약사회 부회장은 “복지부가 논의는 하지 않고 (시범사업을) 하겠다고만 하고 있다”며 “협의체를 구성해 놓고 별다른 진전이 있기는커녕 회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조율도 되지 않았고 합리적인 안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하겠다고만 하니 말이 되지 않는 상황 아니냐”고 분개했다.
이와 관련 지난 4일 한약사회는 세종시 복지부 앞에서 “문제해결 않고 강행하는 첩약보험 반대한다”며 항의 집회를 열었다. 당시 한 한약사회 관계자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분명히 첩약의 안전성·유효성·경제성을 확보해 서두르지 않고 합리적으로 진행하겠다고 국정감사 때 약속했지만, 한의약정책관이 시범사업을 시행한 후 해결책을 찾겠다고 하더라. 이것은 해결책을 알고 있지만, 문제를 방치한 채 강행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약사회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좌석훈 약사회 부회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노홍인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협의체에서 마지막 회의 때 소위원회를 열고 전체회의로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겹쳐있는 상황에 담당 공무원이 첩약급여화를 실시하겠다고 말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정작 중요한 회의는 열지 않고 다른 데서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며 “대상자도, 어떻게 진행할지도 정하지 않았다. 해당 협의체에서 한약제제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하는데 한의협에서 이 부분은 빠지기로 했다. 오히려 한의협에 패널티를 줘야 하는데 특혜를 받고 있다. 절차 없이 진행하겠다는 것이면 우리를 들러리 세우는 것 아닌가 싶다. 철저히 짜고 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의계는 첩약급여화 시행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은경 한의학정책연구원장은 “실무협의는 별도로 정부와 하고 있다”며 “12월에 협의체 회의가 열리기로 했는데 복지부 사정으로 미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협의체 말고 다른 데서도 한약사회와는 만나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조율이 어려운 것뿐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약사회는 애초에 첩약급여화 반대를 주장하며 협의체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협의체에 나와서 계속 반대만 한다. 한약사회는 복지부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내세우며 협상하고 있다. 한약사의 고용 활성화 등에 대해서는 복지부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선 약사회 및 한약사회의 비판에 대해 “협의체에서 논의하고 건정심에 가야 한다”면서도 “안전성·유효성에 대해서는 전통 지식에 따라 처방하고 사후관리시스템도 갖추고 있어 대책이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정부가 인정했기에 시범사업을 하는 것이고 시범사업으로 보다 명확하게 밝혀 보겠다는 의미”라고 반박했다.
한편, 발언의 당사자인 이창준 정책관은 “토론회에서 건정심에 언제 올라가냐고 물어 12월에 올리고자 한다고 말한 것뿐이다. 확정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이달 건정심에 상정되지 않았고 추후 어떻게 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해 자신의 발언을 둘러싼 일련의 논쟁을 일축했다.
아울러 그는 “재정·수가·방식 등에 대한 고려와 함께 지난 국정감사에서의 문제 제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느라 협의체 회의를 위한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 이달 중으로 날짜를 조율하고 있다. 현재로선 언제 ‘첩약급여화’를 시행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